페북열전 4. 양선규전, 레드빈 케이크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0.02 06:54 의견 1

페북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내가 친구 신청한 분이 양선규 교수였다. 나를 페북 세계에 입문한 김 교수가 양 교수님 찐팬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양 교수님의 페북 글쓰기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놀라움이었다. 하루 몇 차례. 그것도 신변잡기의 글이 아니라, 맨 끝에 ‘오래 전 작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글쓰기와 영화, 심리학 등의 학술적인 장문長文은 할 수 없을 때만 겨우 글을 쓰는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즐겨찾기로 등록해 놓고 올라오는 글들을 모두 읽었다. 내용의 수준도, 글의 길이도 충분히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따라가기 벅차서 속도 조절했지만.

그의 글들을 크게 보면 융 심리학, 글쓰기의 방법, 소설비평, 동방불패 같은 중국무협영화, 검도 이야기, 자신의 성장 스토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가 썼던 <장졸우교> 같은 인문학 수프 시리즈도 살펴보았다.

자전적 소설이랄까, 소설적 자서전이라고 할까, 그의 성장 스토리를 엮은 <레드빈 케이크>는 토성에서 시작해서 토성으로 끝난다. 어린 양선규가 토성에서 아버지의 가게 선술집에서 바라 본 세상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양선규로 자라면서 결핍 속에서 그가 보고 경험한 가족과 세상의 이야기를 벌려 나가다가, 교수로 퇴직한 어른 양선규가 즐겨 가는 곰탕집이 있는 토성을 한 바퀴 돌면서 자신의 인생을 크게 한 번 돌아보는 이야기로 마감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글쓰기에 입문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양 교수의 광주체험, 즉 장교훈련 과정 중에 경상도 말씨 쓰는 군인이 광주 대중목욕탕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뻘쭘함과 살의, 그리고 그 이후에 반영된 글쓰기의 경험을 주목했다. 광주항쟁이 나고도 1년이나 지난 81년, 항쟁이나 광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던 대구 사나이의 식은 땀 나는 과정을 생각해 봤다.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지? 80년부터 82년 초까지 나는 대구 앞산 아래 군인이었다. 군인이었지만 카투사였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언론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광주의 일들을 미군들의 성조지(Stars and Stripes)를 통해서 알았다. 광주항쟁이 진압되고 모든 군인들에게, 심지어 카투사들에게까지 ‘국난극복기장’이라는 걸 달아준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양 교수와 함께 대략 2년 정도 같은 대구의 하늘을 이고 산 것 같다. 우리 아버지도 삼팔 따라지여서 양 교수 아버지의 무능한 세월을 나는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도 찌질하고 무능한 우리 아버지의 무력한 삶을 시로 몇 편 썼다.

이 책의 내용 중 페북에서 읽은 글들이 여러 편이 있어 생소하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쓴 글들이라 내용도 조금씩 중복된 것들도 있지만, 50년대 생들, 전후 세대들이 겪어내 한 세월을 읽기로는 충분한 책이 아닐까 한다. 책 말미에 언급한 서머싯 모옴의, 늦게서야 성공한 <인간의 굴레에서>와 같지 않게, 일찌감치 성공한 책 <레드빈 케이크>가 되기를 바란다. 서머싯 모옴의 표현을 패러디한다면, 6펜스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지만 결코 달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양 교수님의 삶, 그리고 여타 모든 50년대 생들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글 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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