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56. 신도시와 선행학습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26 07:13 | 최종 수정 2024.07.26 09:11 의견 2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쌤~! 선행학습은 어디까지 해야 해요?”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많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일전에 선행학습의 폐해를 논하며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그것을 범죄시하여 금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민사회의 가치를 훼손하는 반칙이라는 점과 미리 공부한 아이들이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고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등 교사들의 수업권이 침해된다는 점, 그리고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다. 우리나라는 사교육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를 더하여 수년 전부터 선행학습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현재 선행학습은 학교의 정규 수업에서만 금지되고 있고 사교육에서는 전혀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저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공교육에 몸담은 교사로서 선행학습을 하라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인근 지역의 자율형 공립고나 비평준화 선호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편제표를 보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 수업을 주당 최소 6시간에서 이과 지망생의 경우 8시간까지 듣게끔 짜놓은 상황에서 그것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학습 경감의 일환으로 수능 선택 과목을 축소하고, 필수 교과에서의 문항 수도 줄여왔으며 시험 범위도 대폭 줄였더니 오히려 극도의 킬러 문항이 양산되어 아이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 배우는 양이 줄어도 해야 할 공부는 줄지 않는다. 경쟁 구도 속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일주일에 수학 수업을 8시간이나 하다니! 그걸 충분히 소화하고 내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선행학습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일 수 있다고 인정하게 된다.

군사정권에서 학력고사 끝자락을 경험한 나의 경우에도 선행학습은 만연했었다. 개인 과외 등 사교육이 금지되던 시대였으나 대형 학원의 단과반은 수강할 수 있었기에 중3 겨울방학엔 친구들을 따라 고등학교 과정의 영어, 수학 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그땐 학교도 선행학습에 열심이었다. 오전, 오후에 반강제로 실시한 보충수업(방과후 수업)에서는 부족한 과목을 보충한다는 의미보다는 정규수업 시간표처럼 수업 진도를 나갔다. 거기에 선택은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고2 때까지 고등학교 때 배울 국·영·수 진도를 끝냈던 것 같다. 그리고 고3 때는 주요 교과의 경우 계속 문제 풀이를 했다. 그랬던 나로서도 지금 아이들의 선행학습 불안감을 반칙이니, 비효율이니 하며 매도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교사의 자신감이 흔들리기 좋은 시대에 산다.

선행학습을 얘기하면 사교육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질문도 코앞에 펼쳐진 학원 기반 시설(infrastructure)을 전제하고 편하게 나온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는 지역에서도 나름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는 학교이다. 이 학교를 오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근방 아파트로 이사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다. 그 아파트 단지들의 한 블록 너머에 거대한 학원가가 밀집해 있다. 의무교육인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실력이 우수하다는 우리 지역 중학교들은 공통으로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과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게 애당초 학교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온다.

공공데이터포털(DATA.GO.KR)의 ‘2023 전국 학원 및 교습소 표준 데이터’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사교육 집중도가 가장 높은 지역(동)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남구 대치동(학원 수 1,657개)이다. 그리고 양천구 목동(1,473개), 신정동(1,163개), 노원구 중계동(529개) 등이 서울에서 학원이 많은 지역이고, 비수도권으로는 대구 수성구 범어동(807개), 부산 해운대구 좌동(552개) 등이 유명하다. 우리 학교가 있는 일산동(473개)은 경기도에서 안양시 평촌동(441개)과 더불어 대표적인 학원가 밀집 지역이다. 주요 학원가를 검색하던 중에 이러한 정보를 먼저 접한 곳은 교육 분야가 아닌 부동산 정보 사이트나 유튜브였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이자 저출산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히는 두 분야가 이렇게 밀접한 사이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교육과 부동산의 너무도 안타까운 조우이자 앙상블이다.

메가스터디 창업자인 손주은 회장이 한 강연에서 말한 일화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성적을 올려줘서 좋은 대학을 보낸 제자의 어머님이 감사하다고 찾아온 줄 알았더니 해당 학원 근처로 이사를 와서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 그게 더 고맙다고 했다는 사실. 그래서 특정 지역의 아이들만 혜택을 누리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 강의 업체를 차렸다는 얘기다. 만일 어떤 부모가 좋은 학원가에 집을 얻어 아이가 대학을 잘 가고 집값도 올랐다면 살맛 날 것이다. 그러니 되는 집은 뭘 해도 된다고 자산과 미래 가치(교육)의 쏠림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에 사는가로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나는 1기 신도시 중 분당과 일산 두 군데에서 근무했다. 두 도시는 다른 듯하면서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도심 중앙으로 지하철 노선이 지나고 있고, 외곽으로는 자동차 전용 도로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분당은 분당-수서 간 도시고속화도로, 일산은 자유로)가 같다. 또한 도시를 대표하는 큰 공원이 있고(분당은 중앙공원과 율동공원, 일산은 일산 호수공원), 두 도시 모두 서울과 가까운 원도심의 외곽(분당은 구 성남시, 일산은 원당 및 능곡, 본일산)에 있다. 1기 신도시는 군사 정권의 산물이다. 익히 알고 있듯 노태우 정권이 만성적 주택 부족 해결을 위해 200만 호 건설을 외치며 실시한 사업이다. 다섯 개 1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는 분당이었고, 그다음이 일산이었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대규모 아파트 물량을 공급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중산층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만성적인 부동산값 폭등의 근간이 되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사업이었다.

두 도시에 살아본 나로서는 지금의 택지 개발이나 아파트 건설과는 사뭇 다른 35년 전 도시 설계에 생소한 의문을 갖고 있다. 요즘 신축 아파트 단지는 외관상으로 좀 더 위압적이고 폐쇄적이다. 높은 담장으로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주민들의 일상은 단지 내 커뮤니티로 국한해 놓았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단지를 표방하는 아파트일수록 그런 성향이 강하다. 도보로 접근하기가 어렵고 외부에서 온 차량은 어떻게 진입하고 주차해야 할지 혼란을 겪기 일쑤이다. 예쁘고 좋은 우리말은 사라지고 천박함으로 범벅이 된 변종 외래어가 단지의 이름이 된다.

그러나 30여 년 전에 지어진 1기 신도시의 아파트들은 다르다. 우선 역세권에는 도시 노동자들의 장거리 출퇴근을 감안해 소형 평형의 임대 아파트와 국민 평형의 아파트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아파트들 다음 한두 동 거리를 두고 방 네 개짜리의 대형 평수의 아파트들이 배치되었다. 자가용이나 여타 다른 이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대형 평형에 해당하리라는 단정보다는 좀 더 서민 친화적인 가치관이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모든 계층을 고려한다면 역에 따라 중소형과 대형 아파트를 순차적으로 배치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역에서 아주 먼 녹지 주변에는 타운하우스 개념의 고급 빌라와 단독 주택지들을 배치해 놓았다. 중심 상업 지구와 멀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쾌적한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호될 공간이다. 그렇다고 중소형 단지에 녹지가 없는 게 아니다. 단지 곳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초중고 학생들의 이동 동선을 신중히 고려하여 학교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의 폐쇄적 커뮤니티와는 다른, 도서관과 체육 시설이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향유하기에 결코 비용이 만만치 않은 고급 스포츠 시설인 테니스 코트도 주차 공간이 여유가 있던 시기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흔하게 보였다. 이상한 외래어가 아닌 옥빛마을, 흰돌마을, 아름마을 등의 우리말 예쁜 이름들이 다양한 평형의 아파트들을 품었다. 그렇게 해서 아파트 브랜드명으로 차별화하는 걸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했다(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안건혁, KBS ‘창+’에서 진술). 같이 살기에 아름다운 공간이었으리라는 그림을 그려본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는 일산의 주엽동 일대가, 그리고 ‘넘버3’에서는 평촌 신도시 일대의 아파트들이 배경이었다. 도시가 되기 전에 살았던 원주민들과 이권을 노리는 조폭 세력들, 그리고 그들을 정리하려는 공권력들의 불협화음이 작품의 뼈대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진 복잡한 도시의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미화할 수 없는 군사 정권 아래에서도 계층 간의 조화를 고려한 도시 건설의 철학을 고수하려 했던 누군가의 노력들이 아련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왜 우리는 그때보다 좀 더 자유롭다고 하는 오늘날에 사는 곳으로 미래의 꿈이 좌절되는 아픔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일까. 해진 저녁 누군가는 선행학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불 켜진 학원가를 지나치며 아쉬운 마음에 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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