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동유럽 예술 유목 3
루마니아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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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3 06:36 | 최종 수정 2024.07.2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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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남, ‘콘스탄틴 브랑쿠지’
7월 10일 동유럽 예술유목의 전반부인 불가리아 편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떠나는 일행과 현지에 남을 작가 및 스텝들의 아쉬운 이별이 채 날이 밝기도 전 숙소에서 이루어졌다. 새벽잠을 설치고 나와 일일이 허그로 남은 일정을 기려주는 이곳 사람들이 더없이 정겹게 느껴졌다. 불가리아의 역사 도시 벨리코 로토노보 인근 가브로븟치 마을을 먼동이 틀 무렵 출발하여 루마니아의 첫 목적지 ‘타르구 지우(Targu Jiu)’에 오후 1시경 닿았다. 국경을 넘어 천 리 길을 단숨에 달려와 찾아간 곳은 바로 브랑쿠지 조각공원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내고 파리 유학을 떠나 20세기 대표적 조각가 중 한 사람으로 후대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콘스탄틴 브랑쿠지 조각공원의 마스터플랜은 일차대전이 끝나고 미망인이 된 어느 귀부인의 후원으로 성사되어 타르구 지우를 관통하는 강에서부터 약 2km 구간을 직선으로 그어 도로를 만들고 그 안에 원형 테이블, 키스의 문, 영원의 기둥을 설치하고 주변에 심은 나무의 수종까지도 엄격히 제한하는 등 브랑쿠지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추진되어 1937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인 강에서 시작해 마지막 영원의 기둥까지 연결된 직선도로에 인간의 일생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얼마 후 다시 자신의 공원을 찾아온 그는 대단히 실망스럽게 파리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이전을 약속했던 철로는 그대로 남아 있고 설상가상으로 중앙 도로 한가운데에 없던 교회가 새로 세워진 것이다. 이는 마치 파리의 개선문과 오벨리스크의 한가운데에 건물을 지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아마도 그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종교 단체와의 마찰을 통한 무력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아무튼 그는 파리로 돌아간 후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았으며, 이곳에 자신의 조각공원이 있다는 사실조차 죽는 날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타르구 지우의 브랑쿠지 조각공원은 그의 사후 지인들에 의해 서방에 알려지게 된다.
한 가지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의 사후 유작을 고국 루마니아에 기증코자 했으나 정부에 의해 거절당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공산주의 체제라고 해도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그렇게 푸대접하다니! 그것도 전문 심의위원들로 구성된 사람들에 의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좀 거북한 표현이지만 그의 작품을 두고 ‘쓰레기’ 운운했던 당시의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그의 미술관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근처에 잘 조성되어 있다. 루마니아 정부의 오판으로 프랑스가 어부지리 한 셈이다. 예술작품의 가치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할 때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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