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오늘은 6월 전국 연합 학력 평가가 있는 날이다. 고 1, 2에게는 수능 과목의 선택을 위해 훈련의 성격이 강하고 고 3에게는 수능의 바로미터가 되는 소위 ‘6모(6월 모의고사의 준말)’다. 6모가 바로미터인 이유는 실제 고 3들이 11월 수능을 통해 얻는 점수와 6모의 상관관계가 매우 밀접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하루 종일(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아이들은 시험을 보았다.
1교시 국어 시간, 정말 너무 긴 국어 문제 지문을 낑낑거리며 읽고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보며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시험 시작하고 30분이 지나면 절반의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버린다. 잠을 청하는 아이들. 시험 감독을 하는 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시험을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다. 문제 출제로부터 지금 시험을 치르기까지 돈과 노력이 엄청나게 투여된 것이 이 시험인데 그 사정을 아이들은 알리 없다. 아마 다음 시간인 수학 시간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잠을 청할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교육청과 교육부, 그리고 현장의 우리들조차도 늘 평균의 함정에 농락당하고 만다.
평균의 함정!
오늘 시험을 응시한 절반 정도는 이 시험이 자극이 되었을 것이고, 그중 또 절반은 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였을 것이고, 또 그중 절반은 자신이 공부한 것을 확인하는 긍정적인 시험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평균하면 모의고사의 정의는 대충 실현되는 편이다.
그런데 처음 단계에 있던 그 절반은 어찌할 것인가? 우리 교육의 방향이 그 절반에게도 분명 향하고는 있을 것인데 현재의 교육제도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그 절반을 향하고 있는 관심은 미미해 보인다. 이것이 바로 평균의 함정에 농락 당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노자도덕경 제18장 이야기를 보자.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 (대도폐, 유인의 혜지출, 유대위) 대도大道가 사라지면 인의가 있고, 지혜가 나타나면 큰 거짓이 있다.
대도를 우리 교육 현실에 견주면 아마도 대입大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입이야말로 현재 초중등 교육의 거대한 함정이자 인의(여기서는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으로 가정하자)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그 대입을 위해 아이들은 12년 동안 준비를 한다. 10년째부터 확연히 격차가 생기고 그 이후로는 격차를 회복할 수 없게 된다. 한결 같이 주장하지만 현재의 대입제도 사라져야 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어느새 나는 정년에 다가서 있다.
그러면 인의를 회복하는, 즉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의 길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대학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면 대학에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대입제도는 초중고 12년을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핵심요인이 되었다. 국가가 평가권을 가지는 현 제도(수능)의 방향은 분명 발전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국가가 초중고 교육과정을 주도하면서 그 교육과정의 끝이 대학 입학이라면 이것은 국가가 대학을 위해 봉사하는 꼴이 되고 만다. 교육에서 국가의 위치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국가가 평가권을 독점하는 것은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된다.
지혜는 대입을 위한 온갖 편법으로 치환해 보자. 그러면 그 뒤에 따라오는 말, 즉 큰 거짓이 있다는 말이 확연히 이해가 된다. 아주 간단한 예로, 이 나라 상류층 사람들이 자행하는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한, 즉 대입을 위한 편법과 탈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 지혜는 분별력이 있고 올바르다는 다소 관념적인 용어로서 도덕경에 쓰이는 것처럼 애당초 부정적인 뉘앙스는 없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노자께서 지혜를 이렇게 평가하셨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제법 쓸만한 머리로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머리를 굴리는 정도의 지혜라면 사실 거짓과 동의어로 쓰일 만하다.
시험을 끝낸 아이들에게 나는 고생했다라고 말했더니 ... 아이들은 잠으로 보낸 하루가 미안했는지 겸연쩍게 웃는다. 나도 웃었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