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노자 도덕경 산책(51)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4.24 06:30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학기가 시작된 지 이제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났다. 교육과정에 따른 여러 가지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가끔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갈등국면으로 치닫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다만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학교 분위기를 조금은 힘들어하는 눈치다.

속 사정을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어림짐작으로 문제의 원인은 파악하고 있다. 한 때는 교장이었지만 지금은 교사인 처지에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으니 때론 답답하고 때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 원인이 눈에 빤히 보이지만 그것도 학교장의 철학이라면 철학이라고 볼 수 있으니 입을 닫고 있는 편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뭐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함부로 추측하고, 함부로 재단하고, 함부로 말하고, 또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고 동시에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구분해야 할 것은 ‘함부로’와 ‘과단성’인데 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심사숙고의 유무와 이기적인가 또는 이타적인가 이다.

노자께서도 이 ‘함부로’의 위험에 대해 도덕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그중 38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무릇 예는 진실함과 믿음이 얇아진 것이고, 이로써(예, 그것 때문에) 어지러워진다. 앞질러(함부로) 아는 것은 도의 겉이요, 이로써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도덕경』 38장 일부

노자에게 ‘예禮’라는 것은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적 신뢰관계가 얇아진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가 강조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무질서와 혼란을 향해가는 전 단계에 진입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26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의견에 거의 공감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지智’를 비유한 것이다. 공맹에게 있어 ‘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노장에 있어서 ‘지’는 언제나 유위로써 무위에 역행하는 행위의 시작점이다. ‘전식前識’은 확실한 근거 없이 제멋대로 주관에 따라 억측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맞게 끼워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비자韓非子』 ’해로解老’ 편에 이르기를 “사물에 앞서 행위하고 이치에 앞서 움직이는 것”을 전식前識이라고 했다. 이렇듯 전식은 근거도 없이 함부로 추측, 억측, 이기적 재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위는 타인에게 스스로를 과시하거나 은폐하거나 혹은 드러내려는 인위적인 행위의 대표적 모습이다.

교사로 돌아와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이런 부분이다. 지난 교장 4년의 관성으로 학교 내부 문제와 여러 가지 사태를 파악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이 노자가 말한 전식前識일 것이다. 나의 말이 정확하고 혹은 정확하지 않고는 차치하고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이미 교장이었던 나를 드러내려는 생각이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지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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