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35. 우리 학교 E.T.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01 06:57 의견 0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다음은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중 어느 교과의 교육 목표이다. 빈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일상생활 및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협력적 태도로 자신의 참여 목적과 상황에 맞게 ( )(으)로 의사소통한다.’ ‘( )(으)로 전달되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 등을 융합적으로 활용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한다.’ 빈칸에 해당하는 교과 이름은 바로 ‘영어’이다. 2022년 교육과정은 영어 공부로 얻을 수 있는 부가적 사항을 알려 준다. 이는 협력적 태도, 융합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과 창의적 표현력 등인데 모두 멋진 역량들이다.

나는 5차 교육과정(87년 고시) 때 고등학교에 다녔다. 학력고사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고, 9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다. 5차 교육과정 총론을 찾아보니 개정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 경제적인 발전, 나. 민주화의 정착, 다. 정보화 사회의 도래, 라. 국제 경쟁 및 교육의 증대. 37년 전 문구인데도 읽고 나니 가슴이 벅찼다. 멋모르고 학교에 다녔던 시절에 우리나라가 당면한 시대의 분위기와 과제들이 저 정도였다니! 그리고 교육과정이 제시하는 당시 우리나라의 미래 사회상 역시 가슴을 울린다. 그것은 (1) 자유 민주주의 사회, (2) 정의 사회, (3) 복지사회, (4) 문화 사회였다. 시대 정신은 그렇게 유구하고 완고하다. 한편 당시 외국어 교과의 목표 중 영어Ⅰ의 첫 번째 교육 목표는 ‘일상생활과 일반적인 화재(실제 교육과정에 쓰인 단어)에 관한 말을 듣고 이해하며, 대화할 수 있게 한다.’였다. 교육과정을 보면 이미 듣기와 말하기가 강조되기 시작한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때 영어 공부는 아직 읽고 쓰기가 전부였던 기억뿐이다. 듣기 평가가 있었지만, 평소 훈련이 부족해 어려웠고 비중도 작았다.

영어 얘기를 하면서 교육과정까지 소환해 낸 건 외국어 공부가 주는 의사소통 능력 이상의 추억과 의미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주요 교과여서 열심히 공부해야 했지만, 개인적으로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의 공부법은 이랬다. 왠지 모두가 가는 방향은 싫어서 나만의 길을 간다며 녹색 표지를 입은, ‘글을 완성한다(成文)’는 이름의 저자가 쓴 두꺼운 책을 거부하고 ‘사람 대 사람’이란 이름의 교재에 도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의지박약한 내 마음이었다. 만일 스스로 강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억지로라도 공부하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래서 택한 게 다섯 권짜리 교재를 일정 분량씩 공부하며 정리한 걸 우리 영어 선생님께 매일 검사받는다는 계획이었다. 선생님께 “제가 앞으로 이렇게 하고자 합니다”라며 당시 아이들이 겁내던 학생부 교무실에 찾아가 말씀드린 용기도 그 계획의 일부였다. 물론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행동을 가능케 했던, 고1 때의 치기와 순수함이 수줍고 그립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아하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다는 영광을 얻고 싶은 마음도 그런 계획의 큰 이유였다.

고1 때 내가 몇 반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영어 선생님은 6반 담임이셨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공장에 다니면서 대입을 준비했다던 선생님. 고된 노동 후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려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공부했다던, 첫 수업 시간에 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를 처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전한 대입에 실패해서 눈물을 흘리며 회한의 주먹을 벽에 날렸다는 얘기. 절정에 이른 경험담은 이내 ‘헌데 그때, 주먹이 좀... 까졌... 어요’라는 음 이탈 섞인 멘트로 긴장한 우리를 ‘피식’하게 하고 끝났다. 아무리 엄숙하고 진지하려 해도 선생님의 재기는 주머니 속 바늘처럼 숨길 수 없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수업 중 칠판에 영어 문장을 쓰시고, 그 문장의 일부를 네모로 둘렀다. 그 네모 옆에 ‘ᅟᅧᆼ사적’을 붙이곤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 문장이 To 부정사의 명사적 용법이죠!”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왠지 명사의 냄새가 나지 않나요?” 하면서 직접 칠판에 코를 대고 ‘킁킁’하셨다. 매 수업 시간 선생님의 유머 속에서 변성기 남고 학생들의 중저음 웃음이 복도를 떠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선생님이 영어를 대단히 잘 가르치신 분으로 기억되진 않는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너무 엄격했던 남고의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은 우리를 언제나 따뜻하고 자상하게 대해주셨고 그래서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좋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늘 자신처럼 못난 인생을 살지 말라고 하시며 끊임없는 향학열을 몸소 보여주셨다. 대학원에 진학해 더 열심히 공부하길 원하셨는데 이를 허락할 수 없다는 사립 학교 재단의 결정 때문에 결국 이듬해에 근처 여자 중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종업식 때 선생님은 담임을 맡으셨던 아이들 앞에서 헤어짐이 아쉬워 무척 우셨다고 한다.

그 시절보다 요즘은 영어 공부에서 더욱 실용적인, 말하고 듣는 의사소통 능력이 강조되고 있다. 지난 학기에 영어 면접을 본다는 자사고에 지원한 학생을 도와 모의 면접을 한 일이 있다. 물론 영어 면접 연습은 내가 아니라 함께 하신 영어 선생님이 맡으셨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어서 짐작은 했지만, 중학교 3학년이 보여준 예상보다 뛰어난 영어 회화 실력에 많이 놀랐다. 영어 선생님과 편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포부와 지원 동기, 학습 계획 등을 대화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요즘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실감했다. 그 아이에게 해외에서 살다 왔냐는 등의 질문을 하는 건 구차하다. 아이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 실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학습은 특성상 어려서부터 직접적인 경험을 제공하면 여타 다른 공부들보다는 수월하고 유리한 점이 있다. 그래서 영어는 부모가 형편과 여력이 좋다면 자녀에게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는 과목이기도 하다. 늘어난 현장 체험학습 기간과 해외여행 절차의 편의성은 그런 기회의 폭을 더욱 넓혀 준다. 다른 외국어를 제2외국어라 하대하며 명실상부한 제1외국어의 지위를 누리는 영어의 위상을 생각할 때 저런 환경의 차이는 늘 아쉽고 착잡한 마음을 일으킨다. 수험 공부로서의 과목이 아니라 언어습득의 본질을 강조하는 취지로 2018년부터 수능에서 절대 평가를 실시했지만, 1등급 비율이 12%까지 여유 있던 적이 있다가 작년에는 다시 4.7%로 작아지는 등 여전히 입시에서 중요한 과목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래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을까? 나는 선생님 덕에 책 다섯 권을 거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막판에 가서는 좀 흐지부지해졌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은 왜 매일 안 오냐며 나를 챙겨주셨다. 종례가 끝나고 교무실에 내려가면 그 전날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고 학습장에 서명해 주셨던 선생님이 기억난다. 학기 말에 수줍고 어려워서 제대로 찾아뵙지 못한 건 후회되고 죄송스럽다. 그러던 사이 선생님은 갑자기 학교를 떠나셨다. 요즘, 제자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며 푸념하지만 나 역시 선생님이 고맙고 그리우면서도 연락조차 드리지 못한 제자이다.

굳이 엄격하고 권위적이지 말 것, 가능한 한 즐겁고 재미있는 수업과 교실을 만들 것, 항상 제자들을 따뜻하고 자상하게 대할 것, 이는 모두 선생님에게 배운 좋은 교사의 모습이다. 그 가르침을 그동안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고 살아왔는지 몰라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분명 나의 선생님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때의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든 나를 보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가르침과 배움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인지 생각해 본다. “Thank you my english teacher. Sincerely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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