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33. 보수 대 진보 교육 정책 열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16 07:52 의견 1

삼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보수주의자세요, 진보주의자세요? 라는 질문을 편하게 할 수 없는 시대다. 자신의 입장을 상대가 싫어할까 봐 또는 그 반대의 경우일까 봐 당당히 밝힐 수 없기에 그렇다. 우린 언제부터 어떤 이념적 성향을 품고 있는지 알려주는 게 부담스러워졌을까? 우린 언제부터 보수주의자(진보주의자)가 못되고, 탐욕적이며, 몰상식적이라 함께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간단히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그 기원을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공회 의장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왕당파, 왼쪽에 공화파가 앉아서 우파(우익), 또는 좌파(좌익)로 불리게 되었다는 얘기부터, 시대에 따른 자유주의의 좌우 변천사와 각 국가마다의 특성에 따른 차이들을 따지기까지 하면 딱 잘라 말하기엔 너무 유구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둘 다 중요한 가치라고 타협할 때는 그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비유를 들 때 정도이다.

애매한 개념을 간단히 정의하는데 사전 만 한 게 또 있으랴. 그래서 몇몇 유명한 사전을 살펴보았다. 먼저 보수주의는 ‘기존 사회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위키피디아)’,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의 옹호와 현상 유지 또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네이버 국어사전)’이다. 그리고 진보주의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항하면서 개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위키피디아)’, ‘사회의 모순을 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네이버 국어사전)’이다. 보수주의도 안정적이지만 체제의 발전을 꾀한다는 점에선 수구주의와 다르다. 진보주의도 개혁의 정도에 따라 급진적 진보주의와 구분할 수 있다. 속도와 방법의 차이지 둘 다 체제의 발전을 꾀한다는 점은 같다. 그 누구도 역사의 퇴보를 주장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좀 더 직관적으로 떠올려 보자. 과연 도덕과 명예는 어떤 이념에 더 어울릴까? 자유와 평등은 각각 어디가 더 비중이 클까? 민족주의와 세계화는? 큰 정부와 작은 정부는? 성장과 분배는?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수 있을 텐데 이건 한 사람 안에서도 일관되지 않을 수 있기에 어떤 이는 경제·복지관은 진보적이면서 국가관은 보수적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근데 왜 이리 다툼이 심하고 극렬히 상대를 배척하려 할까? 그건 정당 정치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각 이념을 차용하며 보여준 잘못된 행태 때문이라고 본다. 멋진 보수, 멋진 진보라는 예를 좀처럼 찾기 어려운 세태가 보여준 혼란이라고도 생각한다.

신규 발령 때부터 이념 성향이 다른 여러 행정부를 지나며 교육 정책의 변화를 겪어왔다. 어떤 정권이 잘했냐고?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특정 정권에 만족스러운 평가를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어떨 때는 표방하는 이념과 전혀 다른 정책들을 내세운 적이 있었고, 어떨 때는 서로 다툼없이 함께 추구하는 정책도 있었다. 그동안 혼란스러웠지만, 인상 깊었던 이슈들을 중심으로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추억들을 되짚어 본다. 이른바 ‘보수 대 진보 교육 정책 열전’이다.

‘이해찬 세대’가 있었다. 내 첫 제자들이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대통령) 시기 교육부 장관의 이름을 딴 세대 명칭이다. 한 줄 세우기를 타파하고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던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당시엔 강제로 시행하던 야간자율학습과 월말고사, 사설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하는 개혁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잘해 대학에 들어간 제자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이 시기부터 점차 확대된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들어간 제자의 경우가 많아졌다. 수시 1차, 수시 2차, 수시 2-1, 수시 2-2 등으로 학기와 수능을 전후로 한 수시모집의 구분이 있었다. 그랬던 시절이다. ‘아~ 옛날이여!’라는 탄성을 꾹 참는다. 7·20 교육여건 개선 사업으로 무려 12조를 투입해 학급당 최대 학생 수를 OECD 국가 수준인 35명 이하로 감축하는 작업을 했다. 임기 내 완성하려고 급하게 교실 증축 공사를 하고 혼란이 있었지만, 그런 투자는 쉽지 않은 결단이라고 본다. 중학교 무상의무교육 전면 확대 시작도 당시의 정책이었다.

참여정부(노무현 대통령)는 대입 내신 부풀리기를 막겠다고 상대평가 9등급제를 도입한다. 그러면서 교실 내 치열한 경쟁이 다시 살아난다. 반면 수능은 점수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9등급으로만 표시하는 ‘수능 등급제’를 실시하였다(2007년에 실시한 수능만). 학생들은 대입에서 내신, 수능, 면접 및 논술까지 준비해야 했기에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교육행정 정보화 시스템(NEIS)을 구축하며 큰 혼란을 겪었고, 사립학교법을 제정하기 위해 애썼지만 큰 파장을 일으킨 채 미완으로 끝냈다. 선생님들에게는 교원능력개발평가를 기획한 일이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면서 수시모집 등 대입 선발의 다각화를 꾀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을 시행한 점도 주목할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평등주의 교육을 비판하며 수월성 교육을 강조한 정책을 수립했다. 자율형 고등학교, 특목고, 국제고 확대로 중학교 사교육을 부추겼고 임기 초에 영어 몰입 교육 등으로 비난을 샀으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등으로 학력 중시의 정책을 지향했다. 참여정부 때 입안한 입학사정관제를 전면적으로 대입에 활용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본격적으로 정시 전형이 축소되고 입학사정관제를 중심으로 한 수시모집의 비중이 커진다. 고교 시절 행한 아이들의 활동이 학생부에 잘 기재되어야 하고 자소서, 면접이 중요해져서 아이들도 이른바 ‘스펙’ 관리에 몰입하던 시기이다. 시도 교육감을 민선으로 선출하여 혁신학교 운동, 학생 인권 조례 등 정책 입안의 자율성이 커진 시기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하고 학생부에 학교 내 활동만 기재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입학사정관제의 명칭을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바꿨다. 과도한 외부 스펙 경쟁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3~5세 누리과정을 기획했고,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시행했으며 고교 무상교육을 기획한다. 고교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한국사 과목을 수능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는데 함께 추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극심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기획한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특정 지역과 N수생들의 요구를 감안하여 서울 소재 상위 15개 대학 중심으로 정시모집 비율을 40% 이상 상향하는 대입 방안을 추진했다. 누리과정을 전액 국고 지원하고 대학 입학 전형료나 입학금을 인하 또는 폐지하였다. 유치원에 에듀파인을 도입해서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임기 첫해 지진으로 인한 수능 연기, 코로나19 시기엔 큰 혼란 속에서 대입 일정이나 학사 일정 등을 유동적으로 진행했고 원격 수업 등의 새로운 수업 방식을 정착시킨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놀라운 적응력으로 위기를 넘기게 된다. 돌이켜 보니, 어떻게 그 시기를 건너왔나 싶다.

떠오르는 이슈 중심으로 나열했기에 많은 누락이 있을 줄 안다. 지난 24년을 돌이켜보면 어떤 행정부의 교육 정책은 그들이 추구한 이념과 맞지 않았고, 때론 보수와 진보가 큰 갈등 없이 동의하는 정책도 있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교육 분야는 정권의 이념과 정책이 어울리지 않은 장면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교원능력개발평가 등과 같은 정책은 경쟁을 중시하는 보수 정부에 어울리는 것이었고, 대외 활동 기재를 금지하고 오직 학교 내에서의 활동만 평가 요소로 삼은 ‘학생부 종합전형’은 진보 정부에 어울리는 제도이다. 누리과정, 고교 무상교육 전면 확대 등 여러 정책은 정권의 변화 시기에 걸쳐서 완성되곤 했다. 정치인들의 착각과 달리, 정권은 시한부 타이틀이지만 국가는 영속하는 존재인 셈이다.

참여정부 때 입안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대입 정책은 입학사정관제(학생부 종합전형)이다. 학력고사, 수능 등의 일회성 인지 영역 평가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인재 양성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공감대가 진보, 보수할 것 없이 일치했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강조하고,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도 이어져 한때 수시모집 선발인원이 대입 정원의 70%대 후반까지 이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이나 국민에게 입학사정관제(학생부 종합전형)는 좋은 제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학생부 종합전형의 감축 및 완전 폐지를 원하는 국민이 50.8%로 현행 유지와 확대(37.3%)를 크게 압도한다. 같은 조사에서 학생부 종합전형 개선 내용 중 1위가 비교과 활동 반영 대폭 축소(32.1%), 2위 대학의 정보공개 강화(21.2%)인 걸 보면 이런 불만은 학생 부담과 공정성 여부에 따른 불신 때문으로 보인다.

입학사정관제(학생부 종합전형)를 살펴본 이유는 무려 5개 정권이 지나면서도 유지되고 있는 대입 정책이라서 그렇다. 이쯤 되면 보수와 진보 모두 공감하는 대표적 교육 제도가 아닐까 싶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도 두 진영이 모두 인정하고 존속시킨 제도가 있다는 점에서 교육은 선거나 민의의 영향을 크게 안 받는 다분히 엘리트 주도적인 분야가 아닐까 싶다. 과도한 사교육 부담과 지역 간 격차를 해소시켜 주고, 학생과 학부모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입 전형을 만들어내는, 그리하여 국민이건 동료 시민이건 많은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정책은 과연 어떤 이념과 정당에서 만들어낼 것인가? 잔잔하던 유권자의 마음은 정치의 시즌이 임박하여 또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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