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에 입주를 하고 헛풀만 매는 외지인으로 여름을 보냈다. 가을을 보내고 이제 겨울 길목에 들어섰다. 이웃들이 고추와 들깨를 거둔 땅에 배추와 무를 심어 놓고 도토리 주우러 가던 모습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사이 배추와 무를 거둬 김장까지 마치셨다. 나는 흙 속에서 무게를 더해 가는 무와 흙 위에서 부피를 더해 가는 배추를 오며 가며 눈팅하고, 천둥과 벼락과 번개가 들어 붉게 익어간다는 어느 시인의 ‘대추 한 알’의 시를 영글어 가는 대추에 오버랩하며 시골 백수로서의 가을을 보냈다. 수명이 길 뿐 아니라 단풍도 아름답고 열매까지 맛이 있다는 등의 무려 일곱 가지 덕을 갖췄다는 감나무를 이 동네에서는 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재배되고 시골에서 가면 으레 볼 수 있는 과수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겨울이 너무 추우면 감나무는 얼어 죽는다니 파주 한파가 매섭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대신에 충북 보은이 최대 생산지로 알려진 대추, 그 대추나무가 집집마다 있고 길옆에도 있고 근처에 대추 농원도 있다.
모든 작물을 수확하고 밭은 텅 비었다. 시야는 툭 트였다. 농한기로 접어드는 것이로구나 생각했는데 이웃들은 또 무언가를 부지런히 수레로 나른다. 수확을 거둔 땅에 계분을 더 하여 흙을 돋우고 마늘을 심을 거라고 하신다. 텅 빈 것처럼, 멈춘 것처럼 보이던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시골 백수인 나는 내심 많이 놀란다.
둑방 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마주친 이웃께 인사를 했더니 빈손으로 가지 말고 봉지를 하나 들고 가라고 하신다. 왜냐고 물었더니 ‘콩밭에서 수확하는 것을 보면 이삭줍기를 하라’고 알려 주신다. 적어도 한 해 먹을 수 있는 양은 주울 수 있다고 귀띔을 하신다. 그래서 오며 가며 유심히 살폈는데 벼와 들깨, 고추, 당근 등 대부분 수확을 마쳤지만 콩은 유독 늦게까지 수확을 안 하고 있었다. ‘저 콩은 잘못된 것일까?’, ‘일손이 없어서 수확을 못하나?’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어느 날 이삭줍기를 하라고 일러 주신 이웃을 만날 때 여쭤봤더니 서리태는 수확이 늦다고 하신다. 서리를 맞아 가며 자라서 서리태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12월 초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주는 매년 11월 말경 임진각에서 ‘장단콩 축제’를 하는데 실제 서리태는 그때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파주 장단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은 과거에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될 만큼 품질이 우수하고 눈이 희며 윤기가 자르르 흘러 장단백목(長湍白目)이라고 불렸다. 흑태와 서리태는 겉이 똑같이 검은색이지만 모양이 다르다는데 사실 내 눈으로는 그 차이를 알기 어렵다. 콩국수를 만들면 녹색 빛이 감도는 콩이 서리태다. 영양분뿐 아니라 약성까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콩. 서리태다.
어느 날 둑방 길을 걷는데 저 멀리 밭에 쪼그려 붙은 사람들이 보인다. 밭 옆에 여러 대 차가 세워져 있는 걸 보아 무거워서 들고 가지 못할 만큼 줍는 것 같다. 기러기는 무리 지어 퇴근길에 올랐는데 이웃들은 콩을 줍느라 바쁘다. 우리는 콩 이삭줍기에 바빠서 마당에 떨어진 은행을 줍지 못하니 주워 가라는 이웃의 마당에서 은행을 줍는다.
(글 김상란)
콩 줍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