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모든 꽃은 예언이다』(걷는사람 시인선/ 1만2천원)가 출간됐다.

과연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지점에서 함기석의 시는 시작한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무고한 죽음을 필연적으로 목도하게 되는 일이다. 시인은 사회 구조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자본주의 흐름 안에서 빠르게 대체되는 공석을 재조명한다.

시집에 현현하는 명명은 우리가 감히 체험해 보지 못한 삶의 궤적을 우리의 삶으로 성큼 끌어온다. 그러므로 그의 시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겪은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의 눈물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죽은 듯이 살아가는 이에게 시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무고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은 제도의 일이다.

그렇다면 시란 대체 무엇일까. 시는 왜 이리도 무용한 것일까. 그럼에도 왜 우리는 시를 쓰고, 읽는 것일까.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눈물로 점철된 삶을 보고 혹자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 말하겠지만.

시 속에서 화자는 ‘자기 안의 질긴 슬픔을 씹고 씹’는 사람을 보고 깨닫는다. ‘검정이 숯의 영혼이었음을’(시 ‘술병과 숯’ 중에서).

시인에게 시라는 장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친 마음이 하루를 더 살아낼 수 있도록 그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이러한 미미함일지라도. 그러나 그렇게 얻은 위안으로 우리가 기어코 내일을 믿어 본다면, ‘죽은 줄 알았던 복숭아나무 가지에/ 파릇파릇 움이 돋’(‘사월’ 중에서)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시인은 죽음을 경험한 누군가가 그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일종에 언어의 배달원으로서 시를 쓴다. 숯이 재가 되지 않도록, 그 뜨거운 열기를 지닌 채 오래도록 숯일 수 있도록.

한편 시인의 시에는 소박한 행복에 대한 발견도 담겨 있다. 내가 ‘배고픈 무덤에 잘 들어가는지’ 감시하는 ‘검시관’(‘걷는 사람’ 중에서)이 그림자처럼 뒤를 졸졸 따라오는 생애에도 기쁨과 즐거움은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이 ‘오다 살다 가다’라는 ‘세 개의 동사로 요약된 시’(‘사람은’ 중에서)라면, 삶은 희로애락이라는 고사성어로 이루어진다. 끝없이 슬픈 와중에도 소소한 기쁨이 있다는 것, 기쁨 속에도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92년 ‘작가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함기석 시인은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등을 비롯해 동시집 『숫자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시론집 『고독한 대화』, 비평집 『21세기 한국시의 지형도』 등이 있으며, 박인환 문학상, 이형기 문학상, 이상시문학상, 신동문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함기석 시집 <모든 꽃은 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