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23. 그럴 수 있어!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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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8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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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육체적으론 잃는다는 것이지만 정신적으론 얻는다는 것이다. 이때 얻는 것은 지나온 것들의 경험과 추억들이고 운 좋게 성찰이 따른다면, 약간의 내면적 여유도 해당한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이전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던 일들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좋게 말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체념의 정도가 커지는 것일 게다. 신체적으로 약해지니까 위축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다, 한 걸음 물러서는 상황들이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의 다른 말이 ‘삶의 여유’이다.
아이들을 볼 때도 그렇다. 예전과 비교해 아이들의 인사성이 약해지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한테도 복도에서 마주치는데 인사를 안 하는 학생들이 늘어간다. 그 전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예전의 헐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학교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선생님에게 인사 안 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그건 다른 나라니까 이상하지 않았고, 우리도 지금은 그때와 다르니까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이 변한 걸 자기 기준이랍시고 움켜쥐고 있으면 ‘꼰대’로 불리기 십상이다. 정기고사 중에 시험이 끝나고 교탁에서 답안지를 정리하고 있을 때 내 등 뒤와 칠판 사이 굳이 그 좁은 틈으로 지나가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건 대수가 아니다. 참 무례하구나 싶다가도 또 무언가를 나누어 줄 일이 있어 호명하면 두 손으로 깍듯이 받는다. 아이들 행동의 반전에 서운했던 내 마음도 들쭉날쭉이다. 한 아이의 여러 행동에서도 예의의 편차가 크다. 선생으로서 부족한 건 가르치면 될 일이니 화를 낼 필요가 없겠다. 약 4년여 간의 코로나19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임을 놓치면 안 된다고 다짐하며 지낼 뿐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강력한 회의주의(懷疑主義, Skepticism)를 전개하며 인과율마저도 부정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아주 어릴 적 뫼비우스의 고리를 보고 든 아련한 느낌과 같았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믿음도 의심했듯이 삶을 살면서는 꼭 이유와 근거를 따지고 찾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자주 든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발상들도 사고의 틀에서 한 번 더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란 말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도 강하다’로 두 가지의 가능성을 다 열어놓는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 역시 ‘행복해서도 웃고, 웃으니까 행복해지기도 한다’로, ‘운동하면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건강하니까 운동한다’도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건강하면 운동도 한다’로, 끝으로 ‘투자를 잘해야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야 투자를 잘할 수 있다’도 ‘투자를 잘하면 돈을 벌고 돈을 벌면 투자도 잘할 수 있다’로 바꿀 수 있는 게 여유다.
아이들과 상담할 때도 여유가 필요하다. 진로 진학 상담을 신청한 학생 중에는 학업 고민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있다. 적성 검사 결과와 학업 성취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노력한 만큼 성과가 쉬이 나지 않은 게 영특하지 못한 두뇌로 인한 것임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에겐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아이는 뭔가 눈치를 챈다. 가슴 아픈 순간이다. 선천적으로 두뇌가 좋은 아이는 당연히 공부할 때 유리하다. 뚱뚱한 내가 하루 20시간 농구 연습을 한다고 마이클 조던이 될 수 없듯이 학업에서 타고난 공부 머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너도 열심히 연습하면 농구를 잘할 수 있어’라는 주문이 나쁜 것처럼 아이에게 똑같은 주문을 하는 게 나쁜 일일 수 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우린 언제쯤 각자의 한계에 관대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재작년에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담임교사를 했다. 지금은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당시 2학기 우리 반 반장 아이는 상위권 학생치고는 1, 2학년 동안 줄곧 3등급을 받을 정도로 수학 공부가 힘들었다. 그래도 학기 말에 학급 단합 시간을 준비할 때 두 종류의 예산을 금액별로 잘 나눠서 활동 물품을 주문하는데, 엑셀로 더디게 작업하는 담임 옆에서 손으로 쓱싹 계산해서 딱 맞는 정답을 도출해 냈다. 그때 그 반짝이는 센스로는 도저히 아이의 수학 성적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저 생활 속의 지혜와 공부 머리는 다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은 분명히 실의에 빠진 아이에게도 기운을 줄 사례이다. 간혹 내가 아이들에게 섣부른 희망이나 주는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하고 경계한다. 그래도 여러 가능성 중에 현실적으로 농구 스타보다는 전망이 넓은 게 공부의 세계라면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응원한다. 꼭 머리 좋은 사람만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닐 거라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머리가 좋아질 수도 있고 성적도 따라오는 것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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