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순례길은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로St. Jean Pied de Port(이하 생장)에서 출발하는 약 800km의 프랑스 길Camino France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620km의 포르투갈 길Camino Portugues, 그리고 스페인의 북부 해안길을 따라 걷는 825km의 북쪽길Camino del Norte 등 다양한 루트가 있다. 우리는 가장 대표적인 800km의 프랑스 길을 택하였다.
2019년 9월 초 수리치골 성모성심 피정집에서 기묘한 인연으로 박선생과 만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하자고 의기투합했었다. 그러나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끝날 줄 모르던 코로나로 순례길 약속도 잊혀질 무렵인 2023년 올해 초부터 세종시에 한달 살기로 공주 가까이 내려온 박선생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한번 품은 마음 속 씨앗은 사라지지않고 언젠가는 싹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루 평균 20km를 걷는다 해도 한 달 이상 소요되는 이 순례의 여정을 실행하기까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산티아고에 관련된 책들과 유튜브 동영상을 수없이 보면서 준비물과 프랑스 생장으로 가는 항공기편, 알베르게(Albergue:숙소) 예약 등을 꼼꼼하게 기록해나갔다. 무엇보다 매일 매일의 도착지에서 알베르게를 예약해야 한다는 일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만일 도착한 마을에 알베르게 예약이 끝난 경우, 지친 몸을 이끌고 다음 마을까지 4km 이상을 더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그럼,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사전 예약도 안 되고(요즘엔 개인에게 전 구간을 예약해주는 여행사가 있음), 무조건 선착순이라고 하니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장한 젊은이들이라면 매일 새벽 4시에 출발해 빠른 걸음으로 정오 무렵까지 도착해서 숙소예약이 가능하겠지만, 은퇴한 우리는 체력도 문제거니와 그 복잡하고 안정되지 않은 환경에 던져질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준비물들을 챙기고 체력단련을 위해 걷기훈련부터 시작했다. 혼자서 월송동 집에서 금학동까지 제민천을 따라 걷고는 또 산성공원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가끔은 박선생과 신선생, 그리고 지인들과 만나 공주에서 정안까지 정안천 18km를 걸으며 내공을 쌓았다. 다리가 아파 함께 갈 수 없다는 지인인 이샘은 우리를 응원하며 2박 3일 치악산 둘레길로 데려가 함께 걸어주었다. 걸으면서 운동화가 발목을 반복해 스치면서 벌겋게 되는 상황에 대처하고, 발에 바세린을 듬뿍 발라주어 물집이 잡히지 않게 하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터득해 나갔다.(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