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유로운 수단전
자연미술의 집, 현재의 모습
1990년 우리가 임대해 사용할 때는 유통업체 개인소유의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공주시 소유의 건물이 되었다.
1991국제전 홍보 상황판
곰나루 공산성 금강 일원 등 국제전이 이루어질 현장과 10개 부대행사 등이 적시되어있다.
국제전 추진은 당시 나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일이었다. 이후 인생을 살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세월이 내 앞에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때는 그렇게 인식하지 못했었다. 적어도 뜻을 같이하는 10여 명의 선후배 회원들이 있고 또 그보다 많은 분들의 직간접적 응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다.”라고 수없이 다짐을 했을 뿐이다.
처음 시도하는 국제전을 위해 우선 시작한 일이 ‘자연미술의 집’ 설립이었다. 공주 반죽동에 있던 구 읍사무소건물을 임대하여 전시공간, 창작공간, 생활공간 등으로 리모델링하고 일부 회원은 상주하며 그곳을 국제전 추진본부로 활용했다. 건물은 20세기 초 근대식 건물로 붉은 별돌을 중국에서 들여와 서구식으로 지은 2층 구조와 뒤편에 20여평의 부속건물 그리고 약간의 마당과 공터가 있었다. 1층은 약 50평 크기로 천정이 높아 전시장으로 시원한 감은 있었으나 작업에 많은 난관과 비용이 추가되었다. 2층의 큰방은 편의상 월세를 분납하기 위해 나와 다른 두 회원이 분할하여 각각 월 10만원을 내고 작업실로 쓰기로 했다. 입구의 작은 방은 큰 홀과 분리되어 임선배의 숙소 겸 생활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당시 국제전 관련 각종 회의와 만남이 이 방에서 이루어졌다. 오랜 유학에서 돌아와 뒤늦게 결혼한 그는 결혼 초 한 때 이곳에서 신혼을 꾸리기도 했었다.
‘자연미술의 집’ 수리 및 리모델링은 소장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퇴근 후 또는 주말과 휴일을 이용하다 보니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실내 도색에 사용된 수성페인트만 한 말들이 20통 이상 들어갔다. 실내 도색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시간이 나는 대로 기다란 장대 끝에 롤러브러쉬를 달아 칠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령이 없어 덕지덕지 발랐던 것 같다. 그리하여 자연미술의 집 개관 기념전으로 ‘자유로운 수단전’은 그해 말 초겨울에 가까스로 열리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회원들의 작업 의도나 규모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각자의 공간은 스스로 책임지고 구성하는 방식으로 추진했었다. 나는 밖에서 경험한 햇빛에 의한 물그림자를 실내에서 재현하는 작업을 했는데 숙련되지 않은 솜씨와 어설픈 조명이 밖에서처럼 영롱한 물그림자를 되살려 내지 못해 아쉬웠다. 한파마저 일찍 닥쳐와 전시된 작품 속 물이 얼만큼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자유로운 수단전' 전시준비 자료사진 1
'자유로운 수단전' 전시준비 자료사진 2
불행하게도 당시 전시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준비 단계의 정리되지 않은 사진을 올린다. 그나마 보존상태가 좋지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전시의 주된 내용은 자연현장 작업의 기록과 일부 슬라이드, 영상 및 설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투과와 반사, 이즈미르 A갤러리, 2016
햇빛에 의한 물그림자를 재현하는 작업의 기록이 없어 2016년 투르키에 이즈미르의 A갤러리 개인전에 설치했던 “투과와 반사”작업을 대신 올린다.
“자유로운 수단전”은 이미 두 번의 실내 전시 그리고 해외 실내전을 경험한 뒤에 이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시 설계부터 매우 의욕적 기획에 의해 여러 면에서 획기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련 자료가 없어 잊혀진 전시에 가깝다. 건물 수리 및 주변 환경의 조성 등 전시 외적인 것에 치어 제대로 된 도록은 고사하고 리블렛도 아주 간단하게 제작한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