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전 부산대학교 교수)
인도의 함피(Hampi)는 사원 혹은 신전의 군집처(群集處)다. 석재로 지은 힌두사원은 4세기의 굽타 왕조 때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후 인도 전역에 수많은 사원이 지어지지만, 11세기 이슬람의 침입으로 북인도의 중요한 사원들이 파괴되었고, 남인도 쪽은 이슬람 세력이 미치지 않아 사원들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 함피 역시 그런 이유로 많은 사원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신전, 곧 신들의 거처는 거창하고, 엄숙하고, 신비스럽고 겹겹이 싸여 있지만, 그 가장 안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갔던 로마 군인들은 유태교 신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그곳이 텅 빈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본 이집트의 룩소르, 아부심벨 등의 신전, 스페인의 그 거창한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신전은 그 공간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심부(深部)의 신을 모신 곳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텅 빈 공간일 뿐이다.
신은 원래 형태가 없다. 신이 머무는 곳도 텅 빈 곳이라야 마땅하다. 겉으로 드러난 신상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힌두교 사원도 다를 바 없다. 힌두교 사원의 맨 안쪽은 가르바그리하(garbhagrha)라고 불리는 지성소다. 여기에 신상이나 신을 상징하는 물건(예컨대 시바를 상징하는 링가)이 있다. 힌두교인들은 그 신상이나 상징물에 신이 머무른다고 믿겠지만, 석수(石手)가 돌을 깎아 만든 그 물건에 무슨 신성이 있을 것인가. 신은 신이기에 인간이 만든 물건에 깃들 리 없다. 그것이 놓인 공간은 그냥 어떤 사물이 놓인 빈 공간일 뿐이다.
예수는 성당과 교회를 지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는 가죽 슬리퍼를 신고 허름한 옷 한 벌을 걸치고 다니며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했다. 제자들을 각 지방으로 떠나보내며 단 한 벌의 옷과 간단한 먹을 것만 지니고 떠나게 하였다. 병을 고쳐 주어도 대가를 받지 말게 하였다. 붓다가 살아 있을 때 기원정사는 그냥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에 불과했다. 거창한 건물은 없었다. 공자도 다르지 않다. 공자는 자신을 등용해줄 왕을 찾아 천하를 돌아다녔고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 집에서 학원을 열었다. 그 학원은 조선시대 지방 향교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몰타에서 본 크고 화려한 성당은 수많은 인간의 노동력의 축적물이다. 크고 화려한 성당에서 올리는 기도라 하여 신이 좀 더 귀를 기울였을까? 그 성당에서 미사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귀족들이었을 터이다. 바티칸의 화려한 금칠을 한 성당을 본다면, 슬리퍼에 허름한 옷 한 벌을 걸치고 다니던 예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 받는 민중을 위해 이 땅에 왔지 저 찬란한 수를 놓은 비단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치장한 성물로 올리는 미사를 받기 위해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만 명이 모이는 거창한 교회에는 예수가 임하지 않을 것이며, 돈 많기로 소문난 절에는 부처가 없을 것이다.
거창한 사원, 곧 신전은 보통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일상과 격리된, 성별된 공간이다. 그런 사원이나 신전은 신과 인간을 격리한다. 그런 공간에서만 신과 접촉할 수 있다면 그 신은 그 건물관리인의 지배를 받는 것일 터이다. 인도에서 내가 훨씬 더 관심이 갔던 사원은, 거리에 있는 사원, 시골의 동네마다 있는 사원이었다. 그곳이야말로 범민(凡民)이 자기 소원을 말하며 위로를 받는 곳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계의 기원 혹은 본질에 대한 의문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갖는다.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종교다. 종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종교적 천재들의 설교 역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종교적 천재가 생각해낸 세계의 기원은 해석 여하에 따라 수긍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종교이건 진지한 윤리학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이 욕망의 절제, 타자에 대한 사랑(이타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런 절실한 간절한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답의 묶음을 본래적 종교라 한다면, 이후의 교단과 교리로 구성된 종교는 제도적 종교다. 제도적 종교는 본래적 종교의 세계의 기원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저버리고, 욕망의 절제, 이타성 따위는 구두선으로 치부한다. 그런 말들은 사람을 낚는 도구일 뿐이다. 이따금 그것을 실천, 실현하는 사람이 나오지만, 도리어 예외일 뿐이고 제도적 종교의 타락을 가리는 구실을 할 뿐이다. 제도적 종교는 필연적으로 권력이 되어 인간을 억압하고 특히 약자를 착취한다.
나는 종교에 냉담한 편이다. 종교를 가졌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래적 종교 혹은 종교의 기원이 되었던 이른바 성인들에게 실망한 것도 아니다. 다만 세계의 기원으로 신의 창조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기에 믿을 수 없다. 3천 년 전 시나이 사막과 팔레스타인을 떠돌던 청동기시대 유목인이 발견한 신, 혹은 그들이 바빌론에 끌려가서 배워온 신화를 내가 믿을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물리학이 세계의 기원을 아는 데 더 유효하지 않을까? 하기야 백뱅과 미립자물리학, 초끈이론조차도 신이 창조했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경험했던 성직자와 신자들의 행각도 종교와 멀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어떤 종교의 신실한 신자라면서, 자신의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동의한 공적인 일을 방해하는 자들을 숱하게 보았다. 오직 자신의 권력욕, 물욕을 채우기 위해 별별 악업을 쌓다가 쫓겨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태연히 얼굴을 들고 나타나는 자도 있었다. 그 자의 얼굴에 쇠로 만든 가면이 덮여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어떤 날카로운 비평가가 정곡을 찔렀다. 그는 이미 자신이 섬기는 신과 교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았기에 양심의 가책도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데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고! 참으로 편리한 종교가 아닌가.
나의 경험으로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윤리적이거나 이타적이지 않았다. 종교인이나 종교의 신자 중 선인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보통의 세상사람 중에 선인이 있는 비율과 동일할 것이다. 아니지! 역사적으로 종교인이나 종교의 신자가 더 이기적이고 욕망에 뭉쳐 있는 경우가 있었고, 그 이기심이 정치권력과 결합할 경우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종교적 확신을 가진 권력자가 저지른 비극이 얼마나 많았던가(아니, 지금도 맹렬히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