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었다. 시골 야산을 휘돌아간 황톳빛 길이었다. 그 길 양쪽으로 초록의 작은 나무들과 들풀과 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운데로 그 황톳길은 길게 내달리다가 결국 산을 휘돌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초등학교 5-6학년 자연 수업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학교 후문 근처에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반 친구들과 신발을 벗어 물가에 가지런히 놓고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붙이고 조약돌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는 송사리와 미꾸라지들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던 중이었다. 아파 오는 허리를 펴면서 운명처럼 눈에 들어온 황톳빛 그 길은 어린 소녀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길게 뻗어 매끄럽게 휘돌아간 그 길에 얼어붙은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소녀는 오래도록 응시하였다.
어쩌면 모든 길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마을과 마을로 이어지는 그 길들을 따라가면, 그곳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었다. 마치 C.S.루이스Lewis의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에 나오는 신비로운 마법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이 내게는 길에 대한 향수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향수로 이어졌다.
그 향수의 중심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가 있었다. Camino는 스페인 말로 ‘길’을 의미하며, de는 ‘-의’라는 뜻이다. Santiago는 라틴어 ‘Sanctus lacobus’에서 유래되어 산티, 즉 세인트 야고보Saint James, 성 야고보를 말한다.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 반도 즉 포르투갈과 스페인 지역에서 주로 복음을 전파하셨던 예수님의 가장 총애받는 제자 가운데 한 분이었다. AD44년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에 의해 39세에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사도로서는 첫 순교자가 되었다(사도 12, 1-2). 그후 제자들이 성인의 유해를 스페인으로 모셨다.
711년 이슬람교도들의 스페인 침입으로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100년 이상 행방조차 찾을 수가 없었는데, 9세기 초 기적적으로 한 은수자가 들판 한 곳에 별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따라가 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왕 알폰소 2세는 성인의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별빛이 쏟아지는 들판)'대성당을 지었다.
844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톨릭과 이슬람과의 영토 전쟁이었던 클라비호Clavijo 전투에 야고보 성인이 나타나 이슬람군을 물릴 칠 수 있었다는 목격담이 전해지면서 야고보 성인은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이곳은 세계적인 순례 성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