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도(弓道)에 ‘일시천금 천시여상(一矢千金 千矢如常)’이라는 말이 있다. 화살 한 발을 쏠 때도 천금과 같은 정성을 다해서 쏘고, 천 개의 화살을 쏠 때도 한 발을 쏘는 것처럼 항상 일정한 마음과 자세로 화살을 쏜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는 가을 운동회에 청군의 대표로서 계주 마지막 주자로 뛰게 되었다. 백군의 대표는 부반장 김인숙이었다. 청군 3번 주자의 압도적 기량으로 나는 10m 이상을 앞서서 뛰었는데, 키다리 김인숙에게 끝내 추월을 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수치와 수모의 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몸땡이가 저주받은 육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몸땡이는 완벽한 ‘몸치’와 ‘박치’였던 것이다. 논산 훈련소 시절에도 남들 다하는 총검술 16개 동작을 나만 못 해서 불침번을 설 때마다 혼자서 동작을 외웠다.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나는 재능이 없었다. 당구는 평생토록 아직도 에버리지가 30을 넘지 못하였으며, 수영은 15년째 아침마다 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몸으로 리듬을 타는 재주가 없어 나는 모든 동작을 머리로 완전히 외운 뒤 반복해서 익히는 방식으로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러니 남보다 훨씬 더디고 실력도 턱없이 모자란다. 걍~, 한마디로 모지리가 맞다.

그런 내가, 초로의 나이에 뜬금없는 재능을 발견하였다. 바로 ‘승마’와 ‘사예(射藝)’이다. 전통시대 선인들은 ‘6예(禮)’라 하여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매우 중시하였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참 잘했다고 여기는 몇 안 되는 것 중에서, ‘활쏘기(射)’와 ‘말타기(御)’가 있다. 원래의 계획은 피아노와 드럼을 배우는 것이 나의 노년의 목표였다.

딸내미가 미국의 모 오캐스트라 단원임에도 옛적부터 피아노 좀 가르쳐 달라면 어찌나 까다롭게 굴며, 생색을 내고 아빠를 개무시하는지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기어이 개인 레슨을 받으리라 오래전부터 굳게 결심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지인이 나이 먹어서는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것에 취미를 둬야 한다고 하는 말에 참으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천생 몸치인 내가 할 수 있다는 스포츠가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신비로울 뿐이었다.

어쨌거나 훌륭한 인품의 사범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범님의 강권으로 입문 4개월 차의 초보가 겁도 없이 대회에 참석하였다. 이 나이에 대한체육회의 궁도 부문에 정식으로 선수 등록을 하는 가문의 영광이 발생한 것이다. 비록 고양시 대회이지만 당당히 단체전과 개인전에 모두 참전하였다. 나의 목표는 ‘면불(免不)’이고, 목적은 ‘올림픽 정신’의 구현이다. 면불이란 한 발도 맞추지 못하는 불통을 면하는 일이고, 올림픽 정신이란 참가에 의미를 두겠다는 말이다.

다행히 초등학교 시절 계주 참사와 같은 비극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매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일시천금, 천시여상(一矢千金, 千矢如常)’을 주문처럼 외우며 사력을 다하였다. 뜻밖에 평균 2중을 하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였다.

공자께서 ‘인능홍도(人能弘道)’요, ‘비도홍인(非道弘人)’이라 하였다.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란 말이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이다” 하였다. 시합을 위해 선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를 위해 시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포츠는 좋은 성적을 내어 수상하는 것보다는, 참가해서 함께 어울리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오늘 목표인 면불을 초과 달성하였고, 목적도 충분히 이루었다. 개인전에는 예상치 못한 선전과 높은 점수(?)로 당연히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내게는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큰 공부가 되었다. 인생에 기적이란 없다. 언제나 자기 노력한 대로의 대가만이 주어질 뿐이다. 행여 하는 요행의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노력에 정직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에 곧바로 순종하였다. 어쨌거나 저주받은 몸땡이의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