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투 함부르크전 리블렛, 1989,
야투 최초의 해외전시, 이 전시는 함부르크 일간지 문화면 톱을 장식하는 등 비상한 관심 속에 개최되었으며 ‘1991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 및 심포지움’의 마중물이 되었다.

1. 멍석을 깔다!

옛말에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境成)’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목적할 때 “진정으로 간구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마침내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처음 야투의 회원으로 자연을 찾아 새로운 미술을 연구하고자 뜻을 두었을 때 누구 하나 이 일을 국제적 미술운동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각오를 다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 더욱이 세상의 일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 예기치 않은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야투 회원들의 자연에 대한 구도자적 순수한 표현 행위와 함께 10년 가깝게 자연현장에서 일구어낸 작업들,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실내전을 직접 목격한 서구의 작가들에게 한국의 자연미술은 아마도 문화적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발전해온 서구의 미술, 특히 20세기 컨탬포러리 미술은 인간중심의 미학적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었으며 전 세계가 그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야투의 자연미술은 전혀 새로운 문맥의 접근이었으므로 비상한 관심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야투 소개, 2005년, 호주

호주의 브리즈번 근교 누사(Noosa) 국제미술제에 주요 발제자Key note speeker로 초대받아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나는 2,000년대 이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야투의 활동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때에 따라서는 그곳 사람들과 직접 자연미술체험을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보았다. 어떤 예술가들은 “당신들의 자연미술을 알고 난 후 나의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서양사람들이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응우캠프, 불가리아 가브로븟치, 2015

불가리아의 벨리코토르노브 근교 가브로븟치 마을 Duppini Art Festival에 참가하여 작가 및 행사관련자들과 함께 자연미술 소개와 체험활동을 했다.

야투의 독일전(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도 전시 기간 내내 많은 독일인들이 관람을 했다. 그리고 전시가 끝날 무렵 일군의 작가들이 면담을 요청해 옴으로써 당시 독일전에 직접 참가했던 회원들과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일의 미술인들이 “공주의 금강에 와서 같이 작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당시 우리 현실에 비춰 야투 스스로 국제적 행사를 감당할 능력도 없고, 사회적 기반도 전무한 상태라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2차, 3차 수정안을 제시하며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신들의 숙박비는 물론 가능하면 행사비에 도움이 되도록 참가비를 내고 참가하겠다고 했었다. 결국 더는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들의 제안을 수용하게 되었다.

다음 해(1990년)부터 야투의 회원들은 공주의 관심 있는 미술인 또는 애호가들의 영입과 함께 ‘자연미술의 집’을 설립하고 10년 동안 1인 진행자로만 운영해 오던 틀을 깨고 국제행사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꾀해야 했다.

최초 자연미술의 집
국제자연미술전 기획 및 운영본부로 활용하기 위해 공주시 반죽동 소재 근대식 건물(구 공주읍사무소)을 입대하여 전시실, 작업실, 숙소 등으로 활용하였다. 현재 이 건물은 근대유산으로 개보수되어 공주시 홍보관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