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고등학교사(전 지수중학교장)

1. 승진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승진제도의 의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승진은 하위계급에 재직하고 있는 공무원을 상위계급에 임용하는 것으로 일반승진, 공개경쟁승진, 특별승진, 근속승진으로 구분되며 일반적으로 승진후보자명부 고 순위자 순으로 승진배수범위에 포함되는 자 대상으로 보통승진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승진대상자를 결정하고 승진 임용을 한다.”

그 근거는 국가공무원법 제40조에 규정한 근무성적평정· 경력평정 및 그 밖에 능력의 실증에 따르고 교육공무원은 교육부령으로 규정되어 있고 다시 각 시 · 도교육청 교육감의 규칙으로 보완된다. 근무성적평정에 대한 규정은 각 시 · 도 교육청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가지는데 그 지역의 특수성이 고려된 결과이다.

교사가 승진을 통해 나아가는 방법은 근무성적평정을 통해 승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 외에도 장학사 및 연구사가 되기 위한 시험이 있으며, 기타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2. 보상

보상報償은 ‘어떤 것에 대한 대가’(국립국어원 국어대사전)로 설명되어 있다. 승진이 보상인지 아니면 단지 과정일 뿐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대가’의 문제이다. 승진이 ‘대가’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승진 과정의 난이도와 경쟁의 정도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경쟁과 난이도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승진을 위한 근무성적평정규정 중에 승진점수를 부여하는 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그 제도 안에서 그 점수를 획득하는 과정이 어떠한가를 판별함으로써 난이도와 경쟁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승진 근무성적평정규정(2023년 7월 10일 자 중등교육과 발표 자료 기준-중등, 초등도 별 차이가 없다.)을 분석해 보자. 승진점수는 ‘공통가산점’과 ‘선택가산점’으로 나눌 수 있고 ‘선택가산점’은 다시 '경력가산점(17개 항목 44개의 구체적 규정)’과 ‘실적가산점(10개 항목 12개 구체적 규정)’ 으로 분류된다. 전체 27개 항목 56개의 규정에 해당하는 점수를 모두 다 획득할 필요는 없다.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를테면 ‘경력가산점’ 중 연구학교 점수는 교육부장관 지정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월 0.018’점으로 가장 높다. 이런 학교에 만 5년을 근무하면 무려 ‘1점’의 경력가산점을 획득하게 되는데 해마다 교감 승진 후보자를 결정하는 점수의 급간이 0.01점 차이(심지어는 0.001점 차이일 때도 있다.)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면 '1점'은 엄청난 점수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규정된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학교, 즉 교육부장관 지정 연구학교에 가야만 그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데, 그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인사이동 점수가 또 앞을 가로막는다. 즉 마음먹는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사이동 점수 또한 만만하지 않다. 목표하는 학교로 전출하기 위해 당해 학교에서 인사이동 점수와 관련 있는 업무나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여야만 인사이동 점수를 채울 수 있다.

마침내 어렵사리 목표로 하는 학교에 전입이 되어도 그 학교에 가서 다시 ‘실적가산점’에 해당하는 업무와 활동을 유지하여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이 과정이 최소 6~7년에서 길게는 10년을 넘게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규정된 범위의 점수를 획득한다고 해도 또 하나의 힘든 관문이 남아있다.

그것은 단위학교의 교사 근무평정이다. 근무평정은 단위학교 교장의 권한이다. 물론 교사들이 평정하는 점수가 일부 있다. 하지만 교장이 부여하는 점수를 합하여 ‘수’ ‘우’ ‘미’로 분류하고 그중 ‘수’를 받아야 하고, 더불어 ‘수’가 여러 사람일 때는 첫 번째 ‘수’ 즉 일’ 수’를 받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도내에 승진하고자 하는 교사들을 점수로 순위를 정하여 그중 당해 연도 교감 승진 후보자를 결정한다. 인원수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미세한 점수 차이(0.001의 급간)로 승진 후보자의 탈락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그 경쟁과 난이도는 거의 살인적이다. 이 과정을 뚫고 마침내 교감 연수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보상이 필요해 보인다. 즉 ‘대가’에 대한 보상이 승진 후에 지불되어야 하는 것이다.

3. 교장 승진

교감이 되어서도 안심할 수 없다. 다시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당해 학교 교장의 점수와 교육청에서 부여하는 점수가 만족되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쳐 교감이 된 지 4~6년이 지나야 교장 승진 후보자 대열에 설 수 있다. 교장 후보자 연수를 마친 사람들 중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마침내 교장으로 승진하게 되니 어찌 보상을 바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문자 그대로 천신만고 끝에 교장이 되는 것이다. 공모 교장이었던 나는 교장 임기 동안 천신만고의 과정을 거쳐 승진하신 교장 선생님들 속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4년을 보낸 기억이 있다. 공모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점수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점수를 받으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당연히 교장 4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사의 마음을 버린 적이 없다.

4. 교장 승진은 과연 보상인가?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는 승진 교장들은 당연히 교장이 되는 순간, 교장이라는 위치와 권한은 지난날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장을 단순히 학교 안에서 직무와 책임으로 분류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즉 누구나 교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나 교장의 위치에 이를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장이 되는 순간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지나온 지난날의 노력과 고생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받으려는 마음을 버릴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승진제도 속에서 살아남은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그 자리가 제공하는 것들을 향유하려고 생각한다.

5. 교육이라는 필터를 통해 보는 현재의 승진 구조와 미래

감히 단언컨대 현재의 승진 구조라면 학교 민주주의는 그저 수식어이거나 미사려구일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처럼 선출권력도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당선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교장은 선출 권력이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획득한 완벽환 개인의 노력 결과이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온갖 어려움과 심지어 비난조차 감수하면서 오른 그 자리에 있는 교장들이 교사들과 민주적 학교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그 모든 과정을 내려놓고 수평의 위치에서 교사를 대하고 학교 현안을 논의하자는 것은, 교장이 되기 위해 지나온 자신의 삶에 대한 심각한 부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승진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즉 학교 민주주의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될 공산이 크다. 학교가 민주적 분위기로 바뀔 수는 있지만 그것은 분위기일 뿐, 민주적 의사결정이나 민주적 절차로 나아가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6.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법도 명령도 규칙도 우리가 손댈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청원이나 민원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아주 근본적으로 이 제도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육부 장관 중에 교사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교육감 중에서도 교사 출신이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이렇게 고민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교장 승진 제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만 있다면 현재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비 민주적 상황 중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