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살기 위해 먹어요? 먹기 위해 살아요? 진정 쓸모없는 질문이다. 난 단연코 후자다. 식욕이 왕성할 땐 하루가 세 끼인 게 아쉬웠던 적도 있으니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무엇과 바꿀 수 있으랴. 타고남도 무시할 순 없겠다. 선천적으로 소화력이 좋지 않으면 식탐은 불가능할 테니까. 살을 찌우기 위해 고민인 사람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이다. 컨디션이 좋으면 이른바 물만 먹어도 찌는 느낌이었다. 뭐 하러 힘들게 일합니까?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죠. 그럼, 언제 행복하세요? 세월이 갈수록 곰곰이 생각하면 행복이 언제였던가 명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가끔 지인들에게 얘기한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틀고, 애정하는 야구팀 경기를, 갓 튀긴 동네 옛날 통닭 한 마리와 깔끔한 도수의 술 한잔을 곁들이며 시청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그렇다. 야구는 핑계고 칙힌(치킨)과 술을 먹고 마시는 기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것에 관한 한 관대하고 전투적이며 치열하다. ‘금강산도 식후경’과 같이 모든 절차와 과정도 먹는 것부터고,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며 먹는 행위의 숭고함과 신성함을 강조하다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며 웰-다잉도 먹는 것과 직결시킨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손님을 대해야 하고, 급기야 ‘먹고 죽자’는 결기도 감행한다.
단기 압축 성장을 한 우리 사회에서 노장년층에겐 불과 4~50년 전에 겪었던 굶주림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기에 비교적 풍요로운 이 시기에도 유난히 먹는 데 집착하는 성향이 큰 것 같다. 각종 미디어 컨텐츠에도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진 방송인 일명 ‘먹방’(Mukbang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추가된 한국말)을 탄생시킨 민족이 아닌가. 그러나 이 분야에도 쏠림이 있어서 방송이나 컨텐츠들의 상당수가 먹는 행위의 즐거움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에 불과해 다분히 말초적인 즐거움의 반복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론 과장과 허위가 뒤섞여 그저 먹는 행위로 삶의 문제와 고민을 외면하게 만드는 진통의 처방일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먹는 것과 관련된 직업 얘기로 나름의 의미를 더하고자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제과제빵 클래스에 현장 직업 체험을 다녀왔다. 중학교 1학년은 어디를 다녀도 소란스럽고 생기가 넘친다. 15명의 아이들이 다섯 명씩 한 모둠으로 직접 반죽한 걸 짤주머니에 넣고, 쿠키 모양을 만들어 굽기까지 하는 왁자지껄 신나는 활동이었다. 이 수업을 진행하신 원장님은 제과제빵 전문가로서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지하철역과 가까운 번화가 상가에 나름 규모가 있는 시설이었다. 교육을 하며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빵과 과자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잠시 후에 아이들은 ‘만져보고 말랑한 건 빵이고, 딱딱한 건 과자입니다’, ‘배가 금방 부른 건 빵, 그렇지 않으면 과자 아닐까요?’ 나름 진지하게 답변한다. 원장님이 답했다. ‘이스트를 넣고 발효를 한 게 빵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자예요. 따라서 파이나 페이스트리는 빵이 아니라 과자랍니다’. 아하~! 직업 체험에서는 나도 배운다. 이어서 추가 지식을 알려주셨다. ‘흔히 파티쉐를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의미는 디저트 일체를 만드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에요. 여자는 파티시에르이고, 빵만 만드는 사람은 블랑제리라고 합니다’. 사실 아이들이 쿠키 만드는 재미에 빠져 직업으로서 제과제빵사 자체의 의미에 관해 어느 정도의 느낌을 얻었을지는 분명치 않다. 그저 즐겁게 두 시간을 체험한 것으로도 좋은 영향을 주었으리란 기대에 만족한 시간이었다.
이제 원장님과는 실질적인 얘기를 나눴다. 옆방에 수학 학원과 함께 공간을 쓰고 있어서 연유를 물으니 원래 빌딩 한 층의 상당히 넓은 공간이 베이킹 클래스였는데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2/3 정도의 공간은 학원에 임대를 해줬다는 것이었다. ‘상가 소유주셨군요!’라고 추켜세웠지만 원장님은 아이들과 한 수업은 거의 봉사 개념으로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상호를 밝히지 않았으니 체험비를 공개한다. 두 시간(90분 수업)에 1인당 1만 5천원씩 해서 총 225,000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보조 강사 한 분과 함께 한 수업에 저 금액이 적은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사업 규모에 따른 수익 정도의 체감이 다를 수 있겠다고 여겨졌다.
진로 직업 분야로서 조리사 또는 요리사의 세계는 기술직의 특성상 실력에 따른 급여의 차이가 있는 직종이다. 처음 입문 시에는 처우가 좋지 못한 것도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중식당 조리사의 경우를 들어 본다. 진로 교사가 된 후 구인·구직 사이트에 자주 들어간다. 중소규모의 사업장에서 중식당 조리사를 구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경력직임에도 연봉 3,000만원 정도가 많이 보인다. 부주방장 등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연봉 5,000만원 정도가 최대치인 경우가 많다. 근무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중간 15시부터 17시까지는 휴식이라고 해놓고 일 8시간 노동에 주 6일 근무해서 주당 48시간 근무를 제시한 곳이 많았다. 그렇지만 음식점은 통상 오픈하기 두어 시간 전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그날 요리를 준비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일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숙련된 중식 조리사의 경우는 좀 더 보수가 좋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전직 중국집 사장을 친구로 둔 처남에게 졸라 현황을 알아보았다. 역시 기술을 인정받은 주방장의 경우 월 5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는 정보를 얻었다. 4대 보험과 각종 여비를 포함하고 따지면 연봉 7,500만원 정도이다. 금액만 놓고 본다면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술직의 어려움은 업무 환경과 처우의 열악함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주방에는 위험한 도구들이 많고 큰 힘을 쓸 경우가 많기에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고충도 상당하다. 주방과 홀이 격리되어 있어 요리를 하면서 손님을 만족시키는 보람을 얼마나 느낄지도 의문이다. 아마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충실한 기술의 구현으로 느끼는 짜릿함 정도가 만족을 주리라고 본다.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 느끼는 기쁨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조선업계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숙련공들이 합당한 처우를 받지 못해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보도를 본 일이 있다. 하청 업체에서 일하며 밀린 임금을 보상받기 위해 1세제곱 미터 철 구조물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갇힌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도 있었다.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무분별하게 제기하는 손배소를 제한하자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에도 노동계의 주장과 경영계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다. 숙련된 기술인들이 더 이상 우대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 등 각종 제조업 분야를 메우고 있다.
중국어로도 모자라 베트남어까지 3개 국어의 표지판이 있는 현장들이 만연해 순살 아파트, 물갈비 아파트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더 이상 한국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가 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긴다. 이미 특성화고에서는 신입생을 구하기 어려워 힘든 상황이 수년째이다. 그런 불안들 때문에 아이들은 더더욱 ‘의치한약수’로 몰린다. 지식 중심의 진로에 목을 메고 다른 길은 돌이켜볼 여력이 없다 보니 공부가 힘든 아이들의 무기력은 갈수록 심해진다.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이만큼 성장했다는 사회의 부가 몸과 기술로 나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합당하게 분배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린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았는가, ‘땀 흘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말이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