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것과 없는 것』 김이듬 시집 출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1.17 06:53 | 최종 수정 2023.11.17 06:55 의견 0

김이듬의 여덟번째 시집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문학동네시인선 204번으로 출간한다. 2001년 데뷔 이후 에로티시즘이 돋보이는 도발적인 시편들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인은 기성의 부조리에 일침을 가하는 날카롭고도 명랑한 활기와 변방으로 떠밀려온 존재들을 감싸는 지극한 사랑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구축해왔다. 김이듬은 김춘수시문학상을 비롯 다수의 국내 문학상을 수상했고, 2020년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불합리한 세상을 시로써 자꾸만 들여다본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없다는 체념의 감정이, 이곳에서는 나의 실존을 확인할 수 없다는 미지의 두려움이 화자를 압도해온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화자는 기존의 이해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를 다면적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닐 터, 그 차이를 알아채기 힘들더라도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며 세계와 존재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 이 끈질긴 재탐구는 비록 모순된 세상일지라도 사랑하려는 마음과, 상처 입은 존재들을 끝끝내 살아가게 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 '김이듬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시집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이 출간되었습니다. 2001년 데뷔 후 여덟 번째 시집인데요. 이번 시집을 선보이는 마음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무척 설레면서도 긴장됩니다. 이번 시집엔 어디에도 싣지 않은 미발표작과 새로 쓴 시가 유독 많아서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Q2.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이라는 제목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일곱 권의 시집 제목은 저 혼자 결정했어요. 그런데 이번 시집 제목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은 문학동네 편집부 선생님들이 골라주신 몇 개의 제목 중에서 선택한 것입니다. 눈 밝은 편집자분께서 제 문장의 얄팍한 틈에서 제목을 발견해주신 거죠. 감사합니다.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은 확연함의 측면에서 정반대 개념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유사성이 큰 것들일 수도 있죠. 비가시적인 세계,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존재, 언어로 지칭할 수 없는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Q3. 시편들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자,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데요. 이 애증의 감정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습니다.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는 왜 다시 사랑하고자 마음을 다잡는 걸까요?

누구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저마다 그 감정에 몸부림치거나 해소하려 애쓰면서요. 저는 피를 흘리는 심정으로 시를 쓰면서 세상을 응시하곤 해요. 그러다보면 더러운 웅덩이 같은 저의 내면을 헤엄쳐 탐색할 수밖에 없죠. 좌절감에 휩싸여서도 저는 이 세상과 단절하여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결국 저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조응하며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사랑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랑은 천차만별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하지 않는 자를 범죄자처럼 보는 사회가 좋은 걸까요? 저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 문제에 더 예민한 편입니다. 자신이 상처받을지라도 타인을 다치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Q4. 이번 시집에서는 존재를 다면적으로 바라보려는 화자의 의지가 또한 돋보였습니다.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과 같은 시편에서는 “감히 짐작할 수 없”을지라도 숲의 세계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이해해보려고 하지요. 인간중심적 사고를 넘어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존중하려는 화자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긴 호흡』, 마음산책, 118쪽)라는 메리 올리버의 말이 떠오르는데요. 저도 보드라운 흙이나 오래된 조개껍데기보다 인간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Q5. 마지막으로,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감상할 독자분들께 인사를 건네주세요.

저의 시는 도구로서의 현실적 용도는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꼭 그러려던 건 아닌데…… 프로포즈 멘트나 결혼식 축가로 쓸 사랑스러운 작품도 없어요. 시집 제목처럼 거의 공백이죠. 하지만 시집이라는 문손잡이 하나를 열고 들어와 뛰어다니며 조금 재미있어하면 좋겠습니다.

김이듬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해『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등의 시집을 냈다. 그 밖에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연구서『 한국 현대 페미니즘 시 연구』, 산문집『 디어 슬로베니아』 등을 썼다.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22세기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이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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