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독서 출판 칼럼
수많은 작가들이 사실상의 절필 선언을 하고 있지만 문학시장은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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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 07:20 | 최종 수정 2023.11.1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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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작가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나는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동석한 사람에게 살짝 이름을 물어보아야 했다. 작가는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수십 권의 책을 펴냈다. 나도 작가의 소설은 여러 권 읽어보았는데 문장이 탄탄해서 팬이 되었다. 작가는 요즘 소설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서 이제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은 믿을 수 없다. 최근까지 신작을 발표한 작가의 나이는 이제 겨우 50대 중반이니 언젠가는 대단한 작품을 써서 세상을 뒤흔들지 모른다. 작가가 공식적으로 절필을 선언한 것도 아니고, 작가는 아직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20대 후반과 30대에 문학 출판사에서 근무했기에 무수한 작가들을 만났다. 술자리도 많이 가졌다. 늘 문학작품만 읽었다. 작가와 헤어지고 귀가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많은 작가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가 궁금해졌다. 요즘 작가는 작품으로 만난다. 올해에 현기영 작가는 『제주도우다』를, 방현석 작가는 『범도』를 출간했다. 두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러나 그 많던 작가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지금도 글은 쓰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한 작가로부터 많은 작가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것이다. 요즘 드라마의 대사들은 너무 멋지다. 소설이라면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작법서도 꾸준히 팔린다. 『판타지 유니버스 창작 가이드』를 펀딩할 때 텀블벅과 편집자는 출판이 아닌 게임 분야에 런칭했다. 이 책은 1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모았다. 이로 미뤄 짐작할 때 수많은 이들이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명으로 웹소설을 쓰고 있거나.
나는 일본의 한 출판전문지에서 오스카 에이지의 『캐릭터 소설 쓰는 법』을 발견하고는 2005년에 번역판을 내놓았다. 이 책을 낸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평론가 선정우 씨를 만났고, 이후 『스토리 메이커』 『캐릭터 메이커』 『이야기 체조』 『이야기 명제』 등 오쓰카 에이지의 작법서 5부작을 모두 펴냈다. 이후 김봉석 작가가 기획한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가이드’도 10권을 펴냈다. 요다라는 출판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작법서부터 펴낼 예정이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2017년 가을에 김동식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시장성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문학소녀와 문학소년은 지금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추구할까? 올해 5월 10일에 김동식 작가의 평택고 강연을 참관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김동식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은 이가 의외로 많았다. 그중 많은 학생들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몇 사람은 부모님은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도 작가의 이미지는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도 꿈은 작가였다. 많은 작가가 교사나 교수라는 본캐와 작가라는 부캐를 겸업하다가 작가라는 본캐만 열중하지 않았나! 요즘은 편집자 중에도 작가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중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2016년에 여름에 발표한 한 칼럼에서 “문학이 흥해야 출판시장도 활성화됩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나라여야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문학은 우리 몸의 비타민과 같은 것입니다. 소량이나마 갖추고 있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 법입니다.”라고 썼다. 이른바 기성문단은 위기다. 그러나 문학 자체는 위기가 아니다. 문학은 꾸준히 생산되어 소비되고 있다. 어쩌면 문학이 위기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2018년 여름에 막 태동한 장르 전문 비평팀 텍스트릿과 연대해 『비주류 선언』을 기획했다. 이 책은 장르가 주류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 가득한 집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미학의 계보를 쌓아가는 대상임을 밝히는 비非주류 선언을 담고 있다. 동시에 장르의 목소리를 대변한 B급의 주류 선언이자, 이미 주류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be주류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주류와 비주류, 순문학과 장르 문학, 문단과 비문단의 경계를 해체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임을 자임했다.
이 책의 기획 이후 5년이 지났다. 문학판의 주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구주류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해마다 나오던 밀리언셀러 소설은 완전히 실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소설들도 장르 일색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사실상의 절필 선언을 하고 있지만 문학시장은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세상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바뀐 세상에서 나의 역할도 키우고 싶다. 물론 일은 모두 편집자들이 할 것이다. 하지만 물꼬는 내가 터야 한다. 이후 그 물이 순조롭게 흐르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 벌써 내년이 잔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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