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 교수의 노자 이야기, 노자사상과 초기 도교의 민중성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1.15 07:36 의견 0

1. 도가와 도교

도교의 기원에 대한 설명들은 도교의 잡다함으로 그대로 보여준다. 원대 학자인 마서림은 이러한 도교의 성격을 ‘잡다[雜而多端]’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잡다함은 쿠보 노리따다(窪 德忠)가 성립도교의 개념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핀 후 조심스럽게 내린 정의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도교를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신선설을 중심으로 하며, 거기에 도가, 주역, 음양, 오행, 참위讖緯, 의학, 점성占星 등의 설과 무속신앙을 더하고, 불교의 조직과 체재를 모방해 종합한, 불로장생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주술종교적인 경향이 강한 현세이익적인 자연종교”라고 본다.

이러한 잡다함보다 더 큰 문제는 도가와 도교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도교의 주된 신격에 노자가 등장하고, 한대에 도교가 교단화될 때부터 노자와 『도덕경』은 그들의 주요한 종교적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도가라고 불리는 일군의 학자집단이 도교라는 종교적 성격을 갖느냐라는 문제제기로부터, 춘추말기 혹은 전국시기의 철학적 사유가 한대시기의 도교라는 종교에서 신학적 이론과 신격이 되기엔 시간적인 거리에서 너무 멀다는 생각들이 도가와 도교를 분리해서 보게 한다. 이처럼 도가와 도교를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입장의 학자들은 노장사상을 중심으로 한 도가 사상을 ‘Philosophical Taoism’으로 명명하고, ‘도’를 중심으로 한 동한시대에 탄생한 교단 도교를 ‘Religious Taoism’으로 명명함으로써 구분 지었다.

반면에 서구의 학자들은 대체로 도가와 도교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다. 대표적으로 앙리 마스페로와 같은 학자는 노장의 사유에서도 개인을 불사로 인도하는 점이 있으며, 종교적 신비주의도 있다는 점에서 도교와 도가를 구분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도교를 ‘도가적 종교’라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도가와 도교의 관계를 따지는 일은 매우 복잡한 문제가 있다. 분명한 것은 도교가 도가의 사상을 그들의 종교 신학적 이론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노자라는 인물을 주요한 신격으로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태평도는 그들의 소의경전인 <태평경>에서 노자를 신격화하고 있으며, 심지어 난세에 민중을 구제할 메시아로서 李君을 그리고 있는데, 이군이 바로 노자이기도 하다. 천사도는 <노자상이주>라는 그들의 경전을 만들어 신학 이론으로 확립하는데, 이 <노자상이주>는 <도덕경>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다.

이러한 문제에 착목하여 도가와 도교의 간극을 메우려는 연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후한 시기 교단 도교가 탄생할 때, 이들 교단 도교가 왜 노자 사상과 노자를 이용하는가에 대한 해명은 분명치 않다. 만약 한대의 교단 도교가 민중성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 민중성의 관점에서 노자와 그의 사상을 이용한 것이라면, 노자의 사상에서 민중성에 해당하는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러한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도교가 민중성을 갖느냐라는 문제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도교가 민중성을 갖는가에 대한 논의는 일본 학계에서 이미 논의되었다. 민중도교의 개념이 성립하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쿠보 노리따다의 경우에는, 민간에서 신앙은 도교뿐만 아니라 민중유교, 민중불교의 측면도 있기 때문에 민중도교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으며, 황제나 귀족들도 도교의 신앙을 가졌기에 민중도교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후한말 태평도나 오두미도는 신선사상이 중심이 되지 않았기에 도교로 보는 것이 곤란하다고 한다. 반면에 오쿠자키 히로시(奧崎 裕司)는 쿠보 노리따다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도교가 갖는 성격이 삼교합일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태평도와 오두미도가 애초부터 민중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민중도교라는 개념이 성립한다고 본다. 한국의 학자 중에 도교사를 민중적인 전개의 관점으로 연구한 경우도 있다.

필자는 초기 도교는 민중성의 기반에서 성립되었다고 판단한다. 태평도이든 오두미도이든 모두 민중성이 강한 신학적 이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실천에서도 민중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태평도가 그리는 ‘태평’의 세계는 노자의 소국과민의 이상세계와 이념적으로 동일하며, 오두미도가 실천한 ‘義舍’를 중심으로 한 빈민 구제의 활동 역시 민중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 태평도가 반란을 꾀한 것과 동진시기이긴 하지만 오두미도의 신도인 손은孫恩의 반란 역시 민중들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노자의 사상에서 보이는 민중성이 초기 교단도교의 민중 지향적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주장하려한다. 이를 위해 노자의 사상에서 민중성을 찾아보고, 초기 교단도교의 민중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해명하는 것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물론 노자 2장의 “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나 3장의 “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에서처럼 위정자들을 위한 정치술로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민중의 눈에서는 오히려 노자사상의 민중성을 더 부각해서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민중성에 맞추어 노자를 읽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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