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고등학교 교사

B. 학교 민주주의의 방향

ⅰ. 연수를 개혁하라!

도 교육청 산하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기관이 교육연수원이다. 통상 교육연수원장에 임명되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경남뿐만 아니라 타 시도 교육청도 포함) 대부분 교육감과의 관계에 의해 임명된다. 이를테면 교사 연수가 가지는 근본 문제를 고민하고 그런 방면에 업적을 쌓은 사람보다는(사실 교육현장에서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승진 구조를 통해 그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들 중, 그런 고민을 통해 성과를 축적해 온 사람을 나는 교직 생활 내내 별로 본 적이 없다.) 교육감의 의중을 잘 파악하거나 아니면 교육감의 의도대로 연수원을 운영할 수 있는 인사가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다. 한 마디로 정치적인 사람이 대부분 임명된다. 하기야 교실 수업에서 벗어나는 순간, 교육이라는 기치旗幟만 있을 뿐, 가르치는 일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금 교장을 포함한 교육관료들의 현실이다.

교장으로 지낸 4년 동안 나 역시 그런 정치행위에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자인한다.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수용하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을 선과 악의 기분으로 구분하기는 곤란한 부분도 있다.

어쨌거나 연수원의 연수 프로그램은, 교육의 방향과 학교 민주주의의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면 학교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을 염두하고 지금 운영되고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분석해 보자.

① 교장 대상 승진 연수 프로그램: 2019년 교장 연수를 받으며 나는 교장 연수가 얼마나 형식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때는 심지어 교원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전국 단위 교장 연수였다.)

일방적인 학교 운영 성공사례발표가 대부분이고 특별히 전문가라고 모신 분의 강의는 늘 교육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강의로서 거의 산으로 가는 형국이었다. 학교 현실과 무관하거나 단순히 학교 제도를 기초로 만들어진 연수 프로그램으로는 교장이 되어서 학교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방향도 또 방법도 얻을 수 없었다. 사례는 그저 사례일 뿐이다. 사례의 그 학교, 그 지역, 그 사안에 맞는 일일 뿐 각각의 학교에서 해결하고 처리해야 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연수는 거의 없었다. 가끔 구체적인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 단위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언컨대(지극히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나의 4년 교장 임기 동안 내가 이수한 교장 연수 과정의 그 어떤 부분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간단히 예를 들어, 지금처럼 학부모 민원이 넘치는 상황이라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공식적 절차(매뉴얼)를 연수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다양한 사례가 필요하고, 각 사례를 유형화하여 그것에 맞는 절차를 개발해야 하고 또 법률에 맞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여 그것을 확산시키는 것이 연수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정책연구소를 두고 있다. 늘 개별 사례는 개별 사례에 맞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사례에 맞는 상황과 대처는 그 사례에 한정된다. 연수를 듣는 교장 후보자들은 자신이 근무할 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연수를 듣는다. 그것은 연수의 목적도 방법도 아니다.

② 교장이 되고 난 이후 연수의 문제: 이 연수는 더 심각하다. 특히 정상적인 일과 운영 중에 아무 때나 불러서 연수하는 것을 연수 대상자인 교장이나 연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교장은 수업을 하지 않으니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교장들 역시 그런 사실을 교사와 다른 특권으로 생각한다. 교장은 학교 운영의 중책을 맡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학교 행정의 핵심 위치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 심지어 즐기기 위해 그 자리에 간 것은 절대 아니다.

학교는 공동체다. 교장은 그 공동체의 핵심 운영자다. 핵심 운영자가 자신들의 연수를 위해 일과 중에 자리를 비우는 것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한 번쯤 고려해 보아야 한다. 정말 피할 수 없는 긴급한 연수 외에는 교사처럼 주말이나 아니면 방학 중 연수로 전향해야 옳다. 이 시간 문제만 조정해도 학교 민주주의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초다.

교장이 학교에서 수업 활동의 충실한 지원자가 된다는 것은 수업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항상 조정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사와 학교장이 늘 함께 한다는 인식이 유지될 때 교사는 학교장을 신뢰하고 동시에 학교장은 그 공동체 운영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된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구체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경우를 포함해서 학교장 스스로 언제나 수업 현장에 함께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만 학교의 민주적 상황은 진전될 수 있다. 이것을 수업의 간섭이나 또는 지나친 장학활동으로 오해한다면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의 자질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공유다. 함께! 같이! 움직인다는 인식의 공유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학교를 벗어나 있으면 이 공유는 아주 쉽게 파기되고 만다.

즉 학교에서 교장과 교사의 관계가 학생 수업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공동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 학교 민주주의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결 요건으로 평일 일과 중 연수는 매우 신중하게 편성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일부이기는 하지만 도 교육청 외 타 기관에서 주관하는 연수에 참여하여, 정상적인 일과 운영 중에 학교를 2~3일을 비우는 교장들도 있다. 심지어 그 연수의 경비도 학교 예산으로 충당한다. 이것은 학교 공동체를 와해하고 민주적 분위기를 해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연수의 안내문은 흔히 팩스로 송부되곤 한다.(공문 형식으로 오는 것은 전체 공개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③ 교사 연수에 대하여: 현재 연수원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연수 과정의 다양화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수 과정의 다양화도 사실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과정의 다양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수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현장 초임 교사들은 누구나 학교 적응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 문제는 수업의 질과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수 대상자를 초임 교사로 특정하는 연수는 임용 당시 연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가장 절실하게 연수가 필요한 사람들이 초임 교사들인데 연수원 연수는 모든 교사에게 동일하게 열려있다. 어떻게 보면 초임 교사만을 연수 대상자로 하는 것은 초임 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차별로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연수가 절실한 사람들이 바로 초임교사들이다. 수업, 학생지도, 업무 능력, 교사 상호관계 등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그들을 지원해야 함에도 대부분의 연수는 대상자가 교사, 교육전문직원이다. 즉 초임 교사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시도 교육청도 사정은 비슷하다.

초임 교사에게 관대해질수록 학교 민주주의는 성장한다. 이것은 학교 현장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초임교사들이 학교에 정상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학교를 안정화시키고 동시에 학교 민주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들에게 그 어떤 특별한 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모든 연수 상황에서 경력 교사와 동일하게 취급한다. 심지어 연수 인원이 많으면 고 경력, 나이 순으로 인원을 제한하기도 한다. 연수에 있어서 교장 선생님들에 대한 대우에 상당하는 대우를 초임 교사에게 하는 것이 학교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 시키는 초석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