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시작한 게 페북이었다. 시간 보내기에는 이게 딱! 이라고 추천한 선생님 덕분이었다. 남들한테 으스대고 드러내는 것이 딱 질색인 내게는 좀 이해할 수 없어 의아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전국에 잘 난 사람들이 얼굴을 들이미는 신비한 세계였다.

내가 친구 신청한 사람, 나에게 친구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드니 크게 네 부류였다. 알고리즘 탓이겠지만 작가연作家然하는 사람들, 교사를 비롯한 교육계 사람들, 많지는 않지만,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 인사들, 내가 사는 파주 지역의 인사들로 대분할 수 있었다.

페북에는 특별한 인사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많았다. 아니 페북에 들어와서 이름을 안 사람들이, 나만 몰랐지만, 실제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알았다. 나도 이 자본주의 세계의 사람이니 유명有名이 돈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페북에서 특별한 사람을 발견해 간다. 그래서 이름하여 페북 열전이라는 것을 써보려고 했는데 두 번 쓰고 말았다. 한 번은 시인 박기영 시인, 두 번째는 출판인 한기호 오늘 세 번째 사람을 소개하려 한다.

교육자 김준식.

그는 진주 지수중학교 공모교장 4년을 마치고 다시 진주고등학교 평교사로 돌아왔다. 폐교 직전의 작은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교를 살리고 진짜 교육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교장직을 수행했다. 교장으로서 안해도 되는 수업을 하고 그것도 창의적체험활동(창체) 시간에 '중학교 철학' 시간을 만들어서 가르쳤고, 그 결과로 중학교 철학 1,2(교육과학사)라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책을 만들어냈다. 그의 책은 고대 서양철학의 어르신부터, 동양사상의 태두인 공자, 맹자, 장자, 석가모니 등을 불러오고 이런 사상과 그 어려운 변증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도 중학교 1학년 꼬맹이들이 이해하게 하는 방법으로.

다 아다시피 공모교장제도는 우리 교육의 혁신 아이템으로 들여온 것이다. 교원승진제도의 비합리성을 부분적으로라도 개선하고, 학교의 고질적인 병폐인 관료주의를 돌파하기 위해서 평교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도입 이후 기존 교장제도의 선을 넘어 훌륭한 업적을 남긴 교장들이 나왔다. 내가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있지만, 정해진 임기를 마치고 원직 복직하지 않고 명퇴하거나, 공모교장들이 교육청 고위 간부들로 편입되거나, 교원노조 출신 간부들이 공모교장에 대거 진출함으로써 교육운동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김준식은 교장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고, 아마 상당히 어렵고 불편하겠지만 교사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한편 교육자 김준식이라는 이름이 합당한 지칭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포장하기에는 표장하는 천이 너무 짧고 가볍다. 그는 교육행정가일 뿐만 아니라 교육이론가요, 더 깊이 말하면 노장철학자이다. 동서양의 미술과 음악 의 이해자요, 감상자와 설명자일 뿐만 아니라 직접 한시를 짓는 시인이기도 하다.

한자漢字가 아니라 한문을 알고 부리기에는 너무 젊은 세대인 60대인 그에게는 오히려 한문을 알게 된 것이 그의 아픈 가족사 탓이어서 가슴이 아리다. 나는 아직 미생未生이어서 그의 시 달생의 세계를 다 알 수 없다. 그래도 이 땅에서 이런 사람이 있는 것이 이 나라의 축복이라고 믿는다. 한자를 읽기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 세상, 한시漢詩를 읽고 감상하는 것에 나아가 한시를 직접 짓고 읖조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히 이 땅에 축복일진저!

그는 해마다 시집을 한 권씩 엮고 있다. 이게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전 우리 선비들이 해 온 책 내는 문집 방식이다. 책 한 권을 팔기 위해서 온갖 상술을 동원하는 요즘 시인들에게 유명인의 이름 옆에서, 또는 유명인 행세를 하면서 곁불 쬐기를 그만두라는 경계의 자세다. 오늘 그의 열 번째 한시집漢詩集 달생達生 중에 한 편을 읽는다.

불이불물物而不物

花開花落無停繼(화개화락무정계) 꽃 피고 짐, 멈춤 없이 이어지고

郊外田畓刈裁交(교외전답예재교) 들판 전답은 번갈아 베고 심네

物如物何以相差(물여불하이상차) 사물이 어찌 차이가 있을까만

暗愚癡我次見妙(암우치아차견묘) 어리석은 내 눈엔 볼때마다 신비롭다.

(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