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문예평론가)

1.
다음은 1990년 5월 27일 한국일보에 실린 김현의 제1회 팔봉 비평문학상 수상 소감문의 일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팔봉 선생이 취한 문학적 태도가 올바른 것이었는지 그렇지 않은 것이었는지를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비평은...하나의 반성적 행위입니다."

자, 이것은 비평을 반성적 행위라고 하먼서 정작 팔봉의 문학적 태도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것다는 모순되고 비반성적인 태도입니다. 미의 판관인 평론가가 심판을 부정하는 것은 진정한 평론가라 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이 땅이 낳은 최고 평론가‘라는’ 명성을 얻은 문학평론가 김현(본명 김광남, 1942~1990)에 대한 본격 비평으로, 김현 문학평론가가 취한 문학적 태도를 좀 삐딱하게, 그러나 제대로 따져보려는 비평적 에세이입니다.

2.
김현이 팔봉 비평문학상을, 그것도 제1회 수상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상이라는 게 그 목적하는 바 취지에 부합하는 자에게 주는 영예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거야말로 하나의 상징이 아닌가 말입니다. 대체 여기에는 그 어떤 상징적 의미가 박혀 있는지, 이를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팔봉 김기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먼 김수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그렇게 존경했다는 임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듯이, 우리가 김현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또한 그가 선배의 문학적 태도를 따지지 않을 만큼 존경했다는 데서 김기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지만 모다덜 이 땅이 낳은 최고의 김현 문학평론가가 어떤 위인인지 궁금할 것이니 그에 대한 야그가 더 먼저일 것 같습니다. 이른바 ‘부잣집 아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야 뭐 도련님하고 대령했을 테지만 나의 시골에서는 최근까지도 듣곤하던 말입니다. 요즘 말로야 부르주아 집안의 아덜인 셈입니다. 자, 나는 왜 갑자기 본격적인 평을 놓아야 하는 자리에 계급 타령을 늘어놓고 있는지...딴은 이걸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먼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그대로 김현에게도 해당하는 야그입니다. 김현, 그는 목포뿐 아니라 전라도의 대표적인 상류계층 출신입니다. 김현 <자료집>(문학과지성사, 1993)에는 “부친은 북교동 127번지 공설시장 앞에서 ‘구세약국(救世藥局)’을 열어 양약 도매업에 종사하면서 충청도 이남의 양약 공급을 장악할 만큼 사업에 크게 성공하고, 그는 유족한 환경 속에서 목포를 그의 제2의 고향이자 실질적인 고향으로 삼게 되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그가 진도초등학교, 목포 북교국민학교, 목포중학교, 서울 최고의 명문 경복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 졸업과 대학원에 진학 서울대 강사를 하다 잠시 프랑스 유학을 거쳐 불문학 교수로 이 나라 최고학부의 안정된 상징적 자리를 차지하기까지...이런 그가 <창작과 비평>(1966)에 대한 대결의식의 하나로 <문학과 지성>(1970)이라는 문예지를 창간, 주도한 것도 그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배경을 간과해서는 결코 설명해 낼 수는 없습니다.

김현을 본격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그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가 후일 대지주 집안의 농감의 아들이었던 미당 서정주를 극찬하거나 반대로 임화 등 계급적으로 하층민 출신들로 이루어진 카프나 진보적인 인사들의 문학적 성취물에 대해서는 극도의 혐오를 드러냈던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구글에서 퍼옴)를 좀 보것습니다.

“대한민국의 문학가, 대학교수, 불문학자 및 문학평론가로 유명하다...문학생도들에게는 백낙청, 김윤식과 함께 문학평론계 3인방 최종 보스로 불리우고 그 중에서도 지존 중의 지존으로 평가받는다...그와 김윤식의 저서 <한국문학사>는 문학계 종사자나 생도들이라면 읽어야 하는 불후의 명서 중 하나로 뽑힌다”

이를 통해 볼 때, 그는 일급의 문학계의 명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재기 넘치는 한국의 문학평론가이자 문학사가로서 우리는 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 머 그의 글은 마치 물고구마처럼 착착 감기고, 가히 ‘김현체’라 할 정도로 그가 만들어낸 그만의 재기발랄한 평문評文은 저 호숫가의 윤슬처럼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글이 착착 감기게 잘 읽히고 반짝반짝 빛이 나게 아름답게 써졌다는 것은 하나의 재주로서 기술적인 형식의 문제이지 이념의, 태도의 문제는 아닙니다. 즉 형식이 반드시 내용을 담보한다고 볼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저 암울했던 일제 강도시절 김현의 선배 평론가이자 카프의 창립멤버였던 김기진(팔봉)이 대중과 영합한 시론을 주장하였지만, 얼마 안 있어 왜 일제의 주구가 되고 그들의 마이크가 되고 말았는지...그것은 원칙을 벗어나 언어를 다만 대중의 오락적 취미에 영합하는 도구적 방식으로만 보자는 것으로, 이는 현실을 떠나 언어를 다만 하나의 자율적인 형식으로만 대하는 저 형식주의, 구조주의 이래 기술중심주의, 언어절대주의자들의 대중추수주의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음을 봅니다. 그러나 언어는 다만 유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그 재기 넘치는 붓끝으로 저 ‘불후의 명서’라는 <한국문학사>의 첫 장을 열먼서 던진 제1성은,

"문학사는 실체가 아니라 형태이다"

라는 번쩍이는 모델로서의 명제였습니다. 머 사고의 역사는 그 모델들의 역사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김현, 그는 이렇게 하나의 모델로서 마치 신검을 다스리듯 정언명령 같은 엄숙한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이 땅에 한국문학사를 밝힐 수 있는 하나의 빛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문학은 김현이라는 이카루스를 만남으로써 비로소 저 하늘을 나는 빛나는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아니, 실제로 한국문학은 그를 만남으로써 문학의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겉으로 드러난 사실과 이 사실의 올바르고 정확한 진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체 무엇이 진실이냐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먼 진실이란, 어떤 사태나 문제 또는 인물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김현에 대한 평가만 보더라도 진실을 전달했다기보다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과장하거나 불리한 부분은 은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현에 대한 공식적 평가는 썩 믿을만한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뭐 부분을 떠나 전체를, 거대한 전체지를 보여주지 모했기 때문입니다.

사물이든 사태든 인물이든 그것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서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다각도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인물을 볼 때에는 그의 작업 태도가 공정했는지를 정확하게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김현은 대한민국의 이름이 있는 유명한 문학평론가로,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 또한 풍요한 비평적 자산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유명하고 풍요한 문학적 자산을 남겼다는 사실이 그대로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진실을 해명한다는 건 과연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그가 살아온 행적과 남긴 일차자료를 세밀하게 톺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기본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서의 미적 심판을 주저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 또 그와 관련된 다른 자료를 보것습니다.

“<문학과 지성>은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대문학>과 같은 혈통의 문학주의를 보였다...<문학과 지성>은 비판적 지성, 개인적 성찰, 선구자적 문학의 실험성을 강조하면서 서구이론과 문화의 소개에 방점을 두었다. <문학과 사회>는 대중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채 '문학과 사회'에서 '문학과 개인'으로 축소되어버렸다. 이때의 개인은 엘리트 문학주의자다.”

-최강민, '전후 66년 메이저 문예지의 공과' <문예지 100주년 공동 심포지움>자료

앞의 자료가 매우 호의적인 경우라먼, 뒤의 것은 좀 비판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최소한 좌우를 통틀어 다양한 자료를 놓고 보아야 그나마 대상의 실상을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최소한 김현과 그가 남긴 유산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중요한 근거는 '자율성'과 '미학성', '서구지향성'과 '개인 취향' 등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그가 부르주아 계급의 심미적 정서를 대변한 우파 문학평론가임을 알 수 있는 유력한 표지들입니다.

자, 그러먼 인자부터 본격적으로 이런 우파 문학평론가로서 그의 직계 선배인 팔봉 김기진과는 그 문학적 태도에 있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고, 이것이 또한 미당 예찬과 임화 배척과 어떤 연관에 있으며, 이것이 지금 도착倒錯-본능이나 감정 또는 덕성의 이상異常으로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말합니다-에 빠진 한국문학계에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등을 좀 보것습니다.

먼저, 문학에 있어 ‘자율성’과 ‘미학성’을 중시했다는 것은 서구부르주아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일단의 모더니즘계의 형식 취향, 언어 중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뭐 이것은 부르주아 개인주의 취향을 드러낸 것으로 언어는 사회현실과는 무관하다는 주의입니다. 이와는 달리 언어는 사회현실과 결부되어 있다고 보는 쪽은 아무래도 진보적인 문학계입니다. 그러니까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언어는 약자의 위치에 처한 자들의 계급해방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고, 물질적으로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언어는 다만 ‘자의적인’ 유희의 대상으로 자율적이고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먼 그만인 것입니다.

자, 우리는 이미 이와 관련된 대논쟁을 치른 역사적 유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제 초기, 1920년을 전후하여 조선의 참상을 고발하기 시작하는 최서해, 조명희, 이기영 등 새로운 경향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카프 창단 멤버인 박영희(‘사냥개’)와 김기진('붉은 쥐')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 자들로, 그들은 시와 소설은 무론 평론까지 주도하먼서 한때 기염을 토했던 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는 신경향파 문학의 살인, 방화식 거친 표현들이 비판에 직면하먼서 카프 등 진보문학계에서는 그 기술적 형식에 있어서의 문학의 대중화론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문학의 대중화론을 이끈 선두주자가 비평계의 대선배인 팔봉 김기진입니다. 그런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문학은 사람이 보도록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작금 1년 이래로 극도로 재미없는 정세에 있어서 우리들의 '연장으로서의 문학'은 그 정도를 수그려야 한다......이것이 작년 말부터 예술운동의 각 부분을 통하여 기술 문제가 시작한 원인이다. 그리하여 이곳으로부터 형식 문제는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밑줄-글쓴이)

-'변증적 사실주의'/양식 문제에 대한 초고, 1929. 2.25~3.9, 동아일보

여기, 이 인용부가 바로 한국문학비평사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된 문제적인problematic 부분으로, 그것은 또한 임화와 관련해서만 의의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먼 청년 임화가 팔봉의 이 문제적인 이슈의 호적수로 등장, 일약 역사의 임화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아무튼 임화는 팔봉과의 대논쟁에서 선배를 깨부수고 얼마 안 있어 카프의 서기장으로 등극하게 되었던 것이니, 임화의 이론도 궁금하거니와 이 논쟁의 중요성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사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팔봉의 말('예술운동에 대하여')대로, “표현의 정도를 수그리는 것은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새로운 전술을 취하기 위한 일보 퇴각이다” 라는 진술입니다. 뭐 상황이 불리하니 후퇴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학적으로 보자먼 대중들이 알아먹기 쉽고 재미있게, 좀 달달하게 쓰자는 것으로 아닌 말로 해서 가난하니 몸도 팔 수 있다는 것이니, 이것은 일종의a sort of 전향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런 그가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그 언제 적 팔봉이냐인 듯 마구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니, 대체 정신의 기둥으로서의 신념과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념이 을매나 중요한 것인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가 ‘백수의 탄식’에서 노동자 농민이 되지 모한 인텔리켄차 청년 지식인의, 그들과는 한패가 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부르주아의 탄식과 회한을 넘어 기어코는 카프를 탈퇴, 저들과 한패가 되어서는

“아버지! 어머니!
나도 가겠어요 특별 지원병으로-
......
대대로 받아내려온 제 몸의 이 더운 피
이 피는 조선의 피이며 일본의 피요
다 같은 ooo의 피가 아니오니까
oo년 동양의 역사가 가르칩니다”

-팔봉의 친일시, ‘나도 가겠습니다’ 중에서

하고 부일배가 된 것이 어찌 우연인지, 그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팔봉을 변절하게 만든 것은 "작금 1년 이래로 극도로 재미없는 정세로", 그것은 뭐 좋았던 대정大正 데모크러시가 끝나고 먹구름처럼 대공황이 몰려들먼서 조선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고 만주사변으로, 뭐 파시즘의 광기로 치달리던 시기를 암시하는 것으로, 팔봉은 무론 적지 않은 조선의 지식인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과연 어두운 시대의 하늘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파이오닐 청년 임화는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결코 팔봉 동지가 말한 바 재미없는 정세 즉 탄×(압)이란 예술운동에 있어 형식 문제를 문제삼는 데서 해결되는 것은 이니다. 오직 그것은 ××(계급)적 원칙에 의한 실천적인 세력과의 싸움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그러므로 동지 팔봉의 일언은 '......'의 원칙의 왜곡이란 결정적 치명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국면에서 이러한 자기 진영 내의 우경적 경향과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할 것이다.”

-임화의 '탁류에 항하여'(1929.8.)

팔봉은 이렇게 임화 정론의 쇠망치를 맞고 역사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팔봉은 계급해방의 대원칙을 벗어나서는 일종의 개량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또 거기서 예술주의로 개종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임화는 진영 내 사상 투쟁에서 결정적으로 헤게모니를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굳건한 원칙을 사상투쟁과 행동의 본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대체 카프의 '대중화 논쟁' 관련 팔봉과 임화의 진실은 이런 것입니다.

이런 임화가 과연 팔봉과는 다르게 조선의 쟁의 현실을 올바로 반영 저 유명한 '네거리의 순이'를 비롯 동지이자 적인 팔봉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 그리고 '양말 속의 편지'(1930.1.)라는 쟁의서사the strike narrative를 낳은 것이 어찌 우연이란 말인지, 팔봉은 이를 두고 '단편서사시' 운운했지만, 이는 사실 그 엄격한 기준으로 볼 때에 있어서 내용보다는 형식에 사로잡힌 평가였으니,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내용보다는 형식에, 미학성에 기운 평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3.
이런 부르주아 미학의 변절자 팔봉을 정신적으로 계승한 김현이 미당 예찬에 나서고 카프를 극도로 혐오한 것이 과연 우연이 아닙니다. 자, 이것은 한국문학비평사의 계보학에 해당하는 문제이거니와, 뭐 팔봉이나 미당이나 변절에 있어서나 언어의 미학성을 중시하기는 도낀 개낀이기는 마찬가지니 하는 말입니다. 김현은 김윤식과 함께 쓴 <한국문학사>에서 말했습니다.

“1930년대에 씌어진 그의 초기 시들은 식민지 치하의 그 어떤 시인보다도 더 절실하게 억눌린 정신의 아픔을 노래한다. 대부분의 평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그의 정신의 갈등은 그의 신분 자체에서 오는 것인데, 그것은 보들레르적인 어휘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정신적 갈등이 그의 신분 자체에서 나온 것이라는 진술은 그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종의 자식이었다는 소박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그것으로 환치시키는 어려운 작업을 예술적으로 극히 높은 차원에서 성공시키고 있는데, 그의 신분 문제 역시 그는 그것을 일제 치하에, 일본이라는 대지주 밑에서 종살이하는 한국민 전체의 그것으로 폭넓게 일반화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다.”

이를 요약하먼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시인 서정주‘가’ ‘자화상’을 통해, 식민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한국민의 비극적인 삶을 훌륭하게(‘극히 높은 차원에서 성공’) 형상화 했다(사실소)

→그‘는’ 참으로 위대한 민족시인이다(가치소)

→우리는 미당‘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정책소)

이것은 흔히 말하는 ‘주례사 비평’ 이상입니다. 이건 뭐 일종의 정실비평입니다. 사사로운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외에도 이 책에는 구토가 나올 만한 의도적 오류들이 도처에 넘치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의 문학사에서나 여러 영향면에서나 그 비중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서정주, 김동인, 최남선, 이광수 류의 친일 부역문인들과 중도적 염상섭 등에는 하나의 정치적 분배 행위로서 상당한 지면을 ‘할애割愛’-소중한 시간, 돈, 공간 따위를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고 선뜻 내어 준다는 의미-하먼서도 진보적인 작가들, 가령, 서정주의 동료였던 오장환이나 이용악에게는 지면이 거의 없거나 농민문학만 하더라도 이광수, 심훈에게는 매우 너그러우먼서도 일제하 최고, 최대의 농민소설가인 이기영과 그의 문학적 성취에는 매우 인색하다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우편향적인 기술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이게 도대체 객관적 사실에도 맞지 않거니와, 그가 이렇게 판관처럼 국립 서울대 교수라는 높은 자리에 앉아 ‘서정주는 위대한 민족시인이다’라며 누구나 따라야 할 정언명령처럼 하나의 불가역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친일부역시인 서정주는 역사로부터 면죄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니, 비평가의 책임이 실로 무겁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무거운 책임을 넘어 이것은 공모共謀의 문제가 아닌가 말입니다. 각자 자기 분야를 맡아 썼다고는 하지만, 둘이 밤을 새워 격렬하게 토론하고 술을 먹고 합의하에 썼다고 하니, 이것이 대체 악의적인 공모conspiracy가 아니라먼 그 무엇이란 말인지...

이게 정말이지 악의적인 공모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 “그의 시는 이상하게도 네르발이나 랭보의 시가 그러했듯이 착란으로 치닫지 않고 절제와 달관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것은 그의 정치적 과오와 그의 건강하지 못한 육체를 잠재우기 위해서 그가 찾아낸 유일한 길이다.”(425쪽)라는 부분만 해도 그렇습니다. 고래로 시인이 하나의 종속적 신분으로, 권력자의 따까리로서 신을 맹목적으로 예찬했던 것처럼-“그 대상의 본모습은 상관하지 않고 가능한 한 무조건 그 대상에 가장 거창하고 훌륭한 찬사들을 덧붙이는 것처럼”(플라톤의, <향연>)-꼭 그처럼 작품대상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할 한국최고라는 평론가는 시인을 맹목적으로 예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노예 비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놀라운 것은 과연 ‘정치적 과오’라는 빌어먹을 노예의, 종놈의 수사학rhetoric입니다. 시인이 이미지로 대상을 시화詩化함으로써 대상을 마사지한다먼, 평자는 실체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개념으로 대상을 부드럽게 마사지합니다. 그러니까 미당의 아름답지 모한 불미不美스런 행위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과오’라는 개념의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라고...그러니까 여기, 하나의 완곡어법으로 평자가 사용하는 고급스런 개념으로 다가오는 상징적 폭력형태는 정치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선 언어입니다. 시인은 “애비는 종이었다”고 말하지만, 평자는 “한국민은 일본인 지주 밑에서 종살이하고 있다.”로 과잉-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반민족행위-부역행위-친일행위를 그는 ‘정치적 과오’로 개념-세탁합니다. 시인이 이미지로 마술을 부려 독자를 속인다먼, 부르주아 평자는 이렇게 ‘본모습’을 숨긴 개념이라는 기호 막대로 마술을 부림으로써 독자를 기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김현입니다. 이런 그가 카프에 대해서는 또 그 어떤 망발을 해대었는지 이것은 참으로 경악할 수준의 저급의 비평입니다. 그러니까 김현은 “일제하에서 카프는 단 한 편의 우수한 작품도 내놓지 못하였다”(‘한국문학의 가능성’)라고 일방적으로 카프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를 매도하기에 이르렀으나 대체 이상화, 심훈, 조명희, 김남천, 안막, 이기영과 박영희와 김기진, 그리고 홍기문, 임화를 빼놓고 한국의 민족문학사 기술이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이런 김현도 이제는 신화의 반열에 오른 듯합니다. 정전화canonization를 넘어 그에 대한 축전 형식의 김현 띄우기가 해를 더해갈수록 그의 숭배열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면에서 볼 때, 이성의 독재에 맞서 한국문학계의 한 축을 감당해낸 문지 맹장의 업적은 감수성의 혁명에 값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시즘과 프로이트를 넘어서것다는 그의 다짐은 어디가고 초라한 욕망만 남았으니, 서정이니 실존이니 모던이니 형식이니 구조니, 뭐 거리를 벗어난 아늑한 예원의 뒤뜰에서 무엇을 하것다는 것인지...대체 성욕이 비사회적이듯이, 서정의 세계 또한 비사회적이니 그가 부르주아의 정서와 욕망을 대변했음을, 아니 역사의 배반을 일삼은 그들의 신봉자가 되어 그들의 호화스런 식사를 설거지해주느라 바쁘게 살았다니, 생각해 보먼 한심한 노릇이었으니, 이들을 일컬어 니체는 예술가들은 어느 시대든 도덕이나 철학 또는 종교의 시종이었다 했으니...대체 예술계 종사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여전하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제 하의 불발不拔-의지가 굳어 흔들리지 아니하다-한 카프 정신을 이어받지는 모할망정 오늘 독재와의 뜨거운 투쟁 속에서 태어난 한국작가회의에서조차 사이비 평론가의 찬양 대열에 합류한다는 풍문이니...오 한국문학의 미래여! 화류계 문단이여! 대체 젊은 학도들을 어디로 끌고 가자는 셈인지...정조를 잃은 한국의 작가회의도 이제 자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그렇게 봅니다.

(김상천/ 작가ㆍ문예비평가)

문학과지성사를 상징했던 평론가 고 김현의 1980년대 중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