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참 예쁜 계절입니다. 산은 불타고 나무들은 황금빛 갑옷 입은 병정 같습니다. 살랑거리는 바람결도, 소곤거리는 벌레 소리도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빛이 있어 사물을 보듯 마음이 있어 아름다움을 느낍니다만, 그 너머, 보고 듣고 느끼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철입니다.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 일어나는 생명의 치열함, 한 송이 꽃의 피고 짐에서 느끼는 생명의 운동과 흐름, 장석주의 시처럼 붉은 대추 한 알에서 장마와 태풍과 천둥, 우주의 전율을 느낍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살아보니 특별한 일, 특별한 곳,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여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특별한 시기와 공간의 특별한 분입니다. 시절과 같이 삶에도 철이 있어 철 따라 고개 숙여 사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사들에게는 이 예쁜 계절이 오히려 참으로 힘든 시기입니다. 교사들의 정당한 역할이 오해받고 이러저러한 고발과 민원으로 상처받는 시대입니다. 교육을 개혁하고 교육여건을 개선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는 교육당국에 의해 묵살되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무엇이 핵심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법 몇개 개정해놓고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방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과 위로를 바로 뜨거운 동료애에서 찾습니다. 우리에게는 옆에 계신 선생님이 특별하고 아름다운 분입니다. 동료교사와의 연대로 이 어려운 시기를 돌파해야 합니다. 옆에 계신 동료의 손을 한번 잡아주세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하지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절망의 시대를 구원할 정신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이상하게도/ 남에게 섭섭했던 일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데// 남에게/고마웠던 일은/ 슬그머니 잊혀지곤 합니다// 반대로/ 내가 남에게 뭔가를/ 베풀었던 일은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남에게 상처를 줬던 일은/ 쉽사리 잊어버리곤 합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은 일은 기억하고// 타인에 대한 원망을/ 잊어버린다면/ 삶이 훨씬 자유로워질텐데// 우리네 인생 고마운 일만 기억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 " <뤼궈륭 '한걸음 밖에서 바라보기' 중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상에서 한 발 벗어나는 일입니다. 산속에서는 산을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설악산 만경대나 내장산 서래봉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가을 학교 안의 나무숲을 한 번 걸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예쁜 계절, 아름다움을 돌아봅니다. 우울한 세월 속에 아름다움을 찾고 유지하는 아름다운 선생님들이 우리 교육의 미래입니다. (전종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