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문정(김서형)은 감옥에서 한 달 뒤에 출감할 아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노부부의 간병인 일을 한다. 남편 태강(양재성)은 시각장애인이고 아내 화옥은 치매를 앓고 있다. 태강은 자신도 치매인 것을 알게 된다. 해외에 살고 있는 부부의 자식들은 간병인에게 수고비를 보내면서 영상통화만 한다. 책이 많은 것으로 보아 지식인인 태강은 매우 선하다. 문정도 선하다. 문정은 태강에게 책을 읽어준다. 태강은 문정의 어려움을 알고 크게 도와준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목욕 중에 갑작스런 사고로 화옥이 죽게 되자 문정이 병원에 연락을 하려고 전화를 걸려는 순간 아들의 전화가 받게 된다. 문정은 화옥의 시신을 비닐하우스에 옮겨놓고 그 자리에 자신의 어머니를 대신 데려다 놓는다. 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이어서 여러 파국을 불러온다. 결국 태강은 영상 유서를 남겨놓고 세상을 뜨고 문정은 화옥의 시체가 있는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른다. 그곳에는 예정보다 일찍 출소한 아들과 그의 친구들이 숨어있었다.
영화 <비닐하우스>의 이야기다. 돌봄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돌봄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들다. 두 딸 부부가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자식을 키우지 않았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어머님을 돌본다. 혼자서 너무 힘이 들어 몇 년 전부터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병든 어머님을 14년 8개월째 모시고 있다. 이 일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의 병든 부모의 돌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가끔 그런 이들의 고백을 들으며 위안 받는다. 요즘은 나는 나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서로를 돌볼 사람을 찾을 수 없지만 내가 누군가를 다시 돌본다는 일이 싫어서 포기한지가 오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를 돌보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자식들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가 않다. 나는 동백꽃처럼 죽고 싶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붉게 피어 있다가 지면 그만이다. 그러면 자식들의 수고를 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본 이후 어제 도착한 『어머니를 돌보다』(린 틸먼, 돌베개)란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란 부제가 붙어있다. 띠지에는 “넋을 뺏긴 채 읽었다. 몸에 새겨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는 정희진 선생의 추천사가 적혀 있었다. 린 틸먼은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이다. 그는 간병을 하면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사수”한 이다. 이 책은 그가 희귀 질병을 앓는 어머니를 11년간 돌본 경험을 사실적으로 그린 자전적 에세이다.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아 바로 읽게 됐다.
“어머니의 몸을 다루는 일은 어머니와 나 모두에게 폭력이었다. 처음으로 어머니를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간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를 변기에 앉히고,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의 밑을 닦았다. 어머니의 음부를 씻고, 어머니의 유방 밑살을 닦고,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는 것은 혈연 그리고 무언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어머니는 이동식 좌변기를 사용했고, 가득 찬 변기통을 꺼내 어머니의 침실에서 화장실의 좌변기로 가져가 비우는 일은 역겨웠다. 그걸 할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어머니를 돌보는 내내 그랬다.”
지금 이 역할을 하는 이는 동생이다. 나도 주말에는 이동식 좌변기를 비운다. 이 일은 언제 끝날지를 알 수가 없다. 언젠가 작곡가 고 손목인의 부인인 97세 오정심 여사가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친구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갔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어머님과 같이 본 적이 있다. 97세의 노인이 하루 종일 촬영하고도 생생한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 어머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여튼 작가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장기 돌봄 서비스 제공업체에 연락해 자신을 남편과 함께 바로 등록했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수많은 필요를 지켜보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알게 된 나는 더는 돌봄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자녀가 있고, 그 자녀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해도 그 자녀는 짐을, 과도한 짐을 지게 될 것이다. 자녀가 당신을 돕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자녀는 그것이 당신 탓이라고, 당신이 준비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녀들이 서로 다투게 될 수도 있다.”
자식에 기대서도 안 되지만 국가나 의료시설도 무조건 믿을 수 없다. 작가는 “노인 환자는 특히나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 모든 의사가 노인 환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사들도 있다. 노인 환자는 절망적일 수 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태가 좋아져서 더 나은 여생을 사는 노인 환자도 있지만”이라고 적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모시고 있다. <아침마당>에 출연해 세상에 공언하기도 했다.
2009년에 어머님이 내게 오신 후 나는 처음에는 입주 간병인에 의지했다. 처음 만난 이는 중국 연변의 병원에서 내과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이였다. 그 분을 만난 것은 내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덕분에 어머님은 심각한 상황으로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만난 간병인들은 어머님과 잘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그 이후는 작가의 말대로 내 삶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업을 하는 나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저녁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고 주말에는 매어 있어야만 했다.
작가는 간병이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을 잘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의지했다. 나는 그 대신 직원들의 삶을 존중하려고 애쓴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어머니를 돌보다』를 읽고 있을 때 재주가 많고 성실한 후배 출판인이 신간을 갖고 찾아왔다. 작년에 비해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출판인들을 되도록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출판을 망하게 하려고 악을 쓰는 윤석열 정부를 생각했다. 독서 예산을 거의 모두 없앤 것은 책의 생산자를 매우 비루하게 만든느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판뿐만 아니라 영화나 과학연구 분야의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국민을 위한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이들이 모두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나 양도세 등을 줄여서 부자들의 이익은 챙겨줬다. 정부는 국민들을 돌보지 않고 이념 투쟁만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김병민과 장예찬 같은 국민의힘 젊은 최고위원들은 윤석열만 돌본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셈이다. 그런 자들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아니 분노한 국민들이 그들을 절대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아아, 이 나라의 돌봄 공동체는 과연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