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수중학교 교장

교장이 된 교사들이 다시 교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퇴직을 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다시 교사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앞 선 글에서 세 번째 기준인 '조직'이라는 기준으로 이야기했다.

네 번째 기준은 '성과'다.

학교라는 구조 속에서 교사는 수업이라는 절대 과제를 수행하여야만 한다. 그 외 나머지 일은 수업 이후의 일이다.(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원칙은 그렇다.) 학교의 본질에 비춰보아도 교사에게 있어 수업만큼 중요한 일은 거의 없다. 일주일 동안 중 고교 기준 14~8 시간, 초등 기준 30시간 전후의 수업은 학교라는 사회 조직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교장은 이 수업을 하지 않는다.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다. 교장 4년을 보내며 나는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을 했다. 출장이 있으면 바꿔서라도 반드시 2시간의 수업을 했다. 하지만 교사에게 주어진 평가의 부담이 있는 일주일 18시간 수업과는 애당초 비교가 어렵다.

그러면 교장은 무엇을 하는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장의 역할을 ‘통할’로 표시하고 구체적인 업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통할이라는 단어는 2021년 초, 중등 교육법 제20조 1항이 개정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아직 어떤 학교는 그대로 통할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사실 이 통할이라는 단어는 군사 용어에 가깝다. ‘~ 거느리다’, ‘~를 다스린다’는 왕조국가 시대를 연상시킨다. 일제 강점기 교육 칙령의 잔재로 보이기도 한다. 왕조국가, 식민통치, 권위주의 시대를 거쳐온 이 나라의 교육에 여전히 이러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이렇게 바꿨다.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개정 2021.3.23>

그러면 총괄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개별적인 여러 가지를 한데 모아서 묶음.’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교무 업무를 모두 묶어서 관리하는 것은 무엇일까?

교무 업무를 거시적으로 보라는 것이니 교사의 수업과 관련된 모든 일을 거시적으로 관장하라는 의미인 줄은 알겠으나 구체적인 방향이나 최소한의 방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는 것을 교장의 임무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앞서 내가 이야기했던 조직의 측면에서 교장은 직책일 뿐, 직급이 아니어야 한다고 이해하고 싶었는데 초, 중등 교육법에서는 교장의 역할을 돌연 지도와 감독이라고 말한다면 분명 법은 교장과 교사 사이를 직급, 그것도 위계 혹은 서열로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같은 역할 범위에서 감독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교장이 학생을 교육하는 수단은 무엇일까? 일단 수업은 없다. 그러니 직접적인 교육은 어렵다. 마치 왕조시대의 왕처럼 학교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학생을 교육한다 뭐 그런 의미일까? 현실 부조화 법조문이다. 초, 중등 교육법 20조 1항 대로라면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구체적인 업무가 없으니 성과도 없다. 해마다 교장 성과급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성과지표는 교장의 직접적인 성과와는 무관한 교사들의 성과에 편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교장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4년 동안 내가 하지 않는 일에 체크하면서 참으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학급이 많은 학교와 학생들이 대회에 입상한 것, 교사들의 자발적인 전학공 등이 성과지표로 제시되어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교장이 학교에서 하는 순수한 교장의 일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만을 가지게 한다.

최근의 초등학교 교사들이 죽음으로 항변하는 사건들에서 학교장이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보거나 듣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교장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괄이라는 단어 속에 그 모든 일이 들어 있음을 그들은 모르는 척하거나 아니면 정말 모를 수도 있다.

성과를 낼 구체적인 일이 법령에 의해 정해진다면 달라질까? 교장이 해야 할 구체적인 업무를 제시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상황은 분명 바뀔 것이다.

늘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 등 서양 교육에서 학교 교장이 하는 일을 법령에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데 제시하지 않는 나라가 별로 없다.

미국 초 중등 교장들이 하는 일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연간 학교 교육 계획 및 프로그램 구성’(우리는 대부분 교무부장의 일이 되고 만다.), 학부모 상담, 방과 후 활동 구성 및 실행, 직원 채용, 학교 시설물 관리 계획 및 실행 등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미국 앨버타 주 공립학교 학교장의 임무 규정, Duties of a Public School Principal 2021. 일부 발췌)

독일에서는 교장의 주요 업무가 학교 내 조정이 필요한 업무, 회의 및 연구회 참여, 후원단체 및 공동연구모임의 조정(독일은 학교 후원회가 예산의 일부를 제공한다.), 지역 내 외부 기관(산업 보건 및 안전 서비스, 기업, 고용 기관, 학교, 경찰)과의 협력, 학교 당국과 협력하여 학교 관리 지원, 종일반 운영과 오후반 돌봄을 위한 지원 및 조정(놀랍게도 이것이 교장의 임무에 속한다.) 학교 버스 운행 및 통학 길 안전을 위한 조정 지원 단체와의 협력, 펀딩 신청(예산 요구 계획으로서 매 분기별 작성인데 학교장이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교육부 제정 ‘공립학교 교사 및 학교장에 관한 일반 업무규정(Allgemeine Dienstordnung für Lehrerinnen und Lehrer, Schulleiterinnen und Schulleiter an öffentlichen Schulen, 2020. 일부 발췌)

대한민국 중학교 교장 4년 임기 동안 해 온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명시적으로 또는 법령으로 제시된 것과 총괄이라는 말로 적혀 있는 것과는 책임의 소재가 다를 수 있고 동시에 이렇게 명문화되어 있으면 교장의 분명하고 확실한 역할이 있게 된다.

만약 이렇게 구체적으로 교장의 역할을 제시하는 법령이 제정된다면 교장으로 승진하려는 의욕이 상당 부분 떨어질지도 모른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이런 명문화된 규정에 따라 성과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요구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그래도 공모 교장은 2년에 한 번씩 형식적 평가를 한다. 공모 외 교장은 평가라는 제도가 없다.)

결론은 이러하다. 교장이 된 교사들이 다시 교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퇴직을 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배경에는 교사로 돌아가 수업하는 것에 대한 부담(성과에 대한 부담)과 지도 감독을 하는 위치에서 지도 감독을 받는 위치(구체적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되는 처지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로)로 돌아가기 싫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론 있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