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황희의 수다/ 하나님과 하느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0.02 07:00 의견 1

1992년에 ‘하나님 이름 도용사건’ 이라는 희대의 재판이 있었다. ‘하나님 호칭 되찾기 범 민족회의’의 대표라는 사람이 하나님 이름을 도둑맞았다면서 천주교와 개신교 및 대한성서공회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원고 측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하나님(하느님)’은 천손 민족인 우리 민족이 옛적부터 숭배해온 ‘천제(天帝)’ 또는 ‘상제(上帝)’의 호칭인 ‘한울님’과 ‘하늘님’이 변형된 말인데, 개화기에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영어 성서의 갓(God)을 ‘하나님’으로 번역하여 마치 기독교 신의 고유한 명칭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그 사용을 금지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담당재판부는 “하나님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통명사로서 원고는 물론 기독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원고는 기독교의 하나님 호칭 사용을 금지할 권한이 없다”라는 취지로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 후로도 원고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 버린 꼴이라며 세 번이나 같은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하고 말았다.

신의 보통명사는 히브리어 ‘엘’(단수) · ‘엘로힘’(복수), 라틴어 ‘데오’(Deo), 헬라어 ‘테오스’(Θεός), 영어의 ‘갓’(God) 등인데 우리말 성서에는 모두 하나님으로 번역되었다. 구약 창세기에는 ‘엘’ · ‘엘로힘’이라는 보통명사와 ‘야훼’라는 고유명사가 함께 쓰이고 있다. 성서비평학자들은 앞엣것을 엘로힘의 영문 표기 첫 글자 E를 따서 ‘E 문서’, 뒤엣것을 야훼의 영문 표기 첫 글자 J를 따서 ‘J 문서’라고 구분하여 부르면서 그 신학적 의미를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야훼’는 유대교·천주교·기독교·이슬람 등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숭배하는 유일신을 가리킨다. ‘야훼’는 고유명사이고, ‘하나님’은 보통명사로서 우리말로는 ‘천주(天主)’ 또는 ‘상제(上帝)’라고 할 수 있다. 원래 ‘하느님’ 또는 ‘하나님’은 특정한 신의 이름인 고유명사가 아니라 범신론적인 의미에서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인 조물주를 널리 일컫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에, 어느 종교도 독자적인 사용권을 주장할 수 없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한글판 쿠란에서도 이슬람의 신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호칭을 도둑맞았다는 민족종교 측의 주장은 인정되기 어려운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에는 신의 호칭이 ‘하ᄂᆞᆯ님’으로 표기되었다. 그 후 ‘아래아( ᆞ)’가 탈락하면서 ‘하늘님’이 되었다가 다시 닿소리 ‘ㄹ’음의 탈락으로 ‘하느님’이 되었다.

한글 문법상으로는 ‘하느님’이 옳은 표기이다. 우리말의 개수를 나타내는 기수에는 원칙적으로 존칭어가 붙지 못한다. ‘하나님’, ‘둘님’, ‘셋님’이라고 하는 것은 문법적인 오류이다.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서수에는 첫째 형님, 둘째 형님하고 붙일 수가 있다. 굳이 존칭을 붙이자면 하나님이 아니라 ‘한 님’이라고 해야 문법적으로 옳은 표현이다. ‘한 분’ 이지 ‘하나 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호칭을 둘러싼 다툼은 민족종교와 기독교 사이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개신교의 하나님과 가톨릭의 하느님이 싸워온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일치 정신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신·구교 일치 운동이 일어나 1977년에 공동번역성서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신부 5인과 목사 5인으로 구성된 ‘용어통일 회의’는 표결 끝에 9:1로 ‘하느님’ 으로 호칭을 채택했다. 그러나 개신교 보수 교단이 공동번역성서의 사용을 거부했다. ‘하나님’이 옳고 ‘하느님’은 그르다는 이유였다. 결국, 개신교와 가톨릭은 각기 따로 성서를 발간하고 말았다.

‘하나님’이나 ‘하느님’이나 어차피 외국어인 히브리어를 우리 민족의 종교적 정서에 맞게끔 번역한 단어일 뿐이다. 그 작은 표현의 차이가 마치 '유일신'과 '우상',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신앙의 가늠자라도 되는 양 각기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기저에는 편협한 선민의식과 함께 배타적 종교 우월주의가 숨어있다.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야훼’ 와 ‘엘로힘’의 신앙에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굳이 문제를 논하자면 가톨릭의 ‘하느님’은 하늘 그 자체를 신격화하는 범신론적 경천사상에서 나온 말로, 하늘과 땅이 모두 신의 피조물이라고 선언하는 성서의 입장과는 조화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한, 개신교가 주장하는 ‘하느님’은 문법적인 오류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유일신의 의미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하나’ 라고 하는 의미에 천착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인 삼위일체와는 모순되는 주장이다.

신의 속성에는 ‘유일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유 일체를 포괄하는 ‘보편성’도 있다. ‘하느님’이 틀린 호칭이 아니라 그것을 틀린 호칭으로 여기는 경직된 신앙이 틀린 신앙이며, ‘하나님’이 그릇된 말이 아니라 그것을 그릇된 말로 여기는 도그마가 잘못된 교리이다. 종교적 형식이나 신학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창조주가 있다는 믿음이고, 신본주의적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여름의 매미가 겨울의 눈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신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관중규천(管中窺天)이요 군맹무상(群盲撫象)에 불과한 일이다. 누구도 신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정통’이니 ‘이단’ 이니 하는 것 역시 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한갓 인간의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도대체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이란 말인가? 유대교가 정통이고 가톨릭이 이단인가? 가톨릭이 정통이고 개신교가 이단인가? 유대교와 이슬람은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는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이란 말인가? 같은 교파 내에서도 이단 논쟁은 그치지를 않는다. 정통과 이단이 신자의 숫자 놀음으로 종교 권력의 헤게모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적인 불행이다.

배타적 신앙의 편협함으로 자신이 이해하는 믿음만이 구원의 대상이고 타인의 성경 해석이나 신관은 모두가 이단이며 심판의 대상일 것이라는 그런 교조적 심판자의 태도 역시 매우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이다. 그들이 신앙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아니라 중세의 종교 재판관들이나 가졌을 법한 왜곡과 편견에 가득 찬 맹목적 교조주의일 뿐이다.

신의 이름조차 창씨개명하는 족속들이 신앙이든 신학이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나와 다르면 모두 이단이라 규정짓기를 어찌 주저하겠는가마는 오랜 시간 ‘하나님’과 ‘하느님’은 다른 것이며, ‘하느님’을 믿는 종교는 모두 이단이라고 교육받았던 보수 교단의 세뇌 후유증이 참으로 크다.

길준용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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