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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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06:15 | 최종 수정 2023.09.27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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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소국과민’과 ‘허생의 섬’
경기대학교 동양문화학과 교수
1. 서론
연암의 소설 <허생전>에 등장하는 ‘허생의 섬’을 노자의 ‘소국과민’으로 이해한 연구들이 있다. 이들 연구에서는 연암이 지식을 회의하고 문자가 실제를 은폐한다고 보는 입장을 견지하여, ‘허생의 섬’은 결승문자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될 것으로 분석하며 ‘허생의 섬’을 노자의 ‘소국과민’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연구를 이어서, 이 글에서는 노자의 소국과민이 결승문자를 사용하고, 예법을 폐기하는 것처럼, 만약 허생의 섬이 결승문자를 사용하고, 사족(士族)이 전혀 없는 공동체라고 한다면, 이들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해명하였다. <노자> 제80장의 공동체의 성격을 규명해 노자의 공동체가 허생의 섬과 같을 수 있다면, 선행연구들의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암이 그린 허생의 섬의 성격이 보다 분명해 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노자의 소국과민에서는 문자가 규범이자 예법이기에 의도적으로 예법을 폐기하고 결승문자로 회귀하고 있음을 해명하였다. 노자는 성인의 말씀이 지식이 되고, 이것이 다시 규범과 제도가 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기 위해 명실(名實)의 폐기로서 ‘폐명(廢名)’을 주장한 것을 해명하였다.
다음으로, 노자의 소국과민 공동체와 허생의 섬에서 추구하는 공동체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인류학의 연구와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을 채용해 이들 공동체가 ‘입말 공동체’이며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규모의 공동체임을 해명하였다. 특히 인류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소규모 원시공동체는 문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직접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 수를 최대 2천명으로 제한한 것을 논증한 사례를 가져와, 소국과민과 허생의 섬이 의도적으로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꾸리며 결승문자를 사용하는 공동체임을 해명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노자의 소국과민은 문자와 예법을 폐기하고,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규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허생의 섬 역시 구성원들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자를 아는 사족을 배제하여 문자를 폐기하였으며,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규모임을 확인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연암이 그려낸 허생의 섬은 <노자> 제80장을 소설로 형상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노자> 제80장을 가장 급진적으로 읽어낸 학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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