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충남갤러리 개인전을 준비하며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26 08:33 | 최종 수정 2023.09.26 09:05 의견 4

충남갤러리 개인전을 준비하며

나는 오래전 스스로 한가지 결의를 했었다. 대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도 ‘벽, 바닥 그리고 의식’이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시대의 고통을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그림부터 추상작업까지 섭렵하며 10년 넘게 열심히 작업을 했으나 30년 전 중요한 한 축이었던 평면작업을 중단하였다. 그 무렵 “앞으로 자연을 떠나선 어떤 전시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금기를 깨고 서울 전시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 충남미술인을 위한 전시 공간 공고를 보고 응모하게 되었다.

이응우, “배(A Boat)”, 이란 남부 케심섬, 2016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 걸프만 호르무즈 해협은 항상 긴장이 감도는 곳이다. 그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케심(Qeshm)은 땅속 깊숙이 물기 마른 땅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인정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그리고 야투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한 예술가가 운영하는 “Paradise Art Center”가 있었다. 남부 해안에는 페르시아의 전통을 잇는 조선소가 있고 바닷가에는 아름다운 목선이 정박하고 있었다. 나는 현장의 작은 돌과 나무토막을 활용해 배의 형상을 단순하게 재현하였다.

지금 기획하는 나의 전시는 자연에서 발견하거나 얻은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풀어놓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자연미술운동은 단지 미술을 넘어 사회문화운동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들이나 산, 또는 강과 바다에 은닉되어 스스로 소멸하도록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 야투 창립부터 초기 10년은 자연미술에 대한 알음알이를 하던 시기였다. 작업을 하면서도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가늠치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그 무렵 이론적 체계를 세우려면 철학, 미학, 노장의 자연주의 사상 등 많은 것을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 했으나 현학적이지 못한 탓에 어느 것도 결행하지 못하고 현장 작업에만 매달렸다.

이응우, “드로잉(Drawing), 한국 공주, 2014

작은 도랑이나 개울에 가면 모래톱과 정겨운 물의 흐름을 만나게 된다. 거대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시시껄렁해 보이지만 모래 사이 수면에 투영된 하늘과 구름 주변의 정경 등은 충분히 정서적이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긴 세월 지난 뒤돌이켜 보니 그때 이론에 매달렸더라면 오늘의 작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예술의 직관력을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창작의 결정적 순간은 인성과 신성의 접점이다. 정말 좋은 작품의 최초 감상자는 늘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린 것이 좋은 작품이다. 선지자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언젠가 자신의 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격을 수 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선승(禪僧)이 선방에 들어 우주의 진리를 꽤뚫고 해탈을 하지 않던가!

거울 앞에 서면 스무 살 청년은 간곳 없고 터럭이 허옇게 세버린 중년이 다가선다. 아! 어쩌다 나를 만나 그 꼴이 되었는가! 연민이 스쳐 지나간 뒤에 그래도 헛되진 않았다는 위안이 뒤를 따른다.

이응우, ”여름나기(Estivate)“, 작업실, 2023

펜데믹의 긴 터널 끝에 기록적 장마 그리고 이어진 폭염, 정말 가공할 기후환경과 만났다. 작품이 아니고도 마당의 잔디를 가꾸고 작은 연못과 텃밭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이미 여름은 나의 피부를 다양한 색으로 변화시켰다. 그을린 역대급 내 모습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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