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있다가 오랜만에 반갑게 이웃을 만난다. 고추 등 작물들을 수확하고, 김장 배추를 심는 철이라 도통 만나질 못했다. 하루는 아침 일찍 밖에 있는데 두 분이 산행 복장을 하시고 지나가시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일찍 어디 가세요?” 웃으신다. “산에 놀러 가유~~” “등산가세요? 파평산에요?” 또 웃으신다. “같이 가여~~도토리 주우러 가는디” “아~그러시구나. 네에~ 조심히 다녀오세요” 시간을 쪼개서 도토리까지 주우신다. 낮은 자세로 허리와 무릎을 굽히고 펴고 반복하는 자세, 고단할텐데도 당최 쉴 줄 모르는 분들이다.

우리집 닭장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큰 놈 한 마리와 병아리 두 마리를 데려왔네요?” 말 안 해도 아신다.

“네 자꾸만 가져다 주시네요~ 2주된 병아리가 온 후 비가 계속 내려서 집안에서 열흘 가까이 데리고 있었어요”

“잘했어요. 큰 놈들은 괜찮은데 병아리는 비에 약해요.” 잘했다 하시면서 병아리를 집안에서 키우다니 놀라는 눈치다. (사실 나도 놀랍다. 초딩때도 해 보지 않은 병아리 키우기라니)

“병아리 온 지 2주 됐는데 몸이 2배로 커져서 신기해요”

“병아리는 금방 커요” 여기까지는 좋았는데......무시무시한 말들을 또 하신다.

이 분의 암탉들은 지난 여름에 알 40개를 품어서 겨우 11개를 부화시켰다. 찜통 더위에 알이 곯았다고 혀를 차셨다. 그런데 암탉이 자꾸만 더 알을 품으려고 해서 조금만 넣어 줬더니 또 부화시킨 것이 최근이란다. 그중에 세 마리를 쥐들이......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기도 들고양이가 있으니 조심하란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이 찾아들면 상자로 만든 병아리집에 문을 닫아준다. 밤새 안녕하기를 바랄뿐이다.

“여기는 땅이 딱딱해서 흙을 파질 못하니 물통이 깨긋하네~ 우리 애들은 흙을 죽자고 파서 물통이 흙범벅이야. 방금도 물통을 씻어 주고 왔네”

“흙목욕하는 거죠? 흙목욕을 해야 닭이 건강해진다는데”

“에구 몰러~ 얘들은 얌전하네. 하루에도 몇 번씩 물통 닦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여”

나는 흙목욕 시키려고 딱딱한 땅을 호미질로 뒤집고, 흙과 모래를 부어주고 그러는데도 도통 땅이 보드라워지지 않는다. 사람은 물로, 돼지는 진흙으로, 닭은 흙으로 목욕하면서 흙과 함께 몸에 붙었던 진드기나 기생충을 털어내면서 깃털도 정리하고, 무더위에 높아진 닭의 체온도 낮춘다고 한다. 오래 전 기사에 '닭들에게 흙목욕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제목이 기억난다. 한때 이슈화 되었던 시사저널의 ‘살충제 달걀 사건’도 결국 같은 맥락의 내용이다. 공장식 축산에 따라 A4용지보다 작은 케이지에서 사는 산란계 사육장에는 필연적으로 닭진드기 같은 기생충이 늘 수밖에 없다. 이 기생충을 없애야만 닭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 농가는 대부분 살충제를 뿌린다. 농장에서 닭을 꺼내놓고 살충제를 뿌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만 마리의 닭을 꺼내놓고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 쉽지 않아 대부분 닭과 모이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살충제를 뿌리는데 닭이 비를 맞은 것처럼 축축해질 정도로 뿌린다는 것이다. 닭들은 살충제에 노출된 먹이를 먹고 살충제 달걀을 낳는다는 내용이다.

다시 찾아 본 기사 원문에 가슴이 뜨금해 진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그 달걀을 인간이 먹습니다. 그런데 달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며 달걀을 버리고 닭을 죽입니다. 닭으로서는 이처럼 잔인하고 억울한 일도 없겠다 싶습니다. 닭은 그저 흙목욕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글 김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