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독서 출판 컬럼
65세 이후 30년 새 인생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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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08:04 | 최종 수정 2023.10.0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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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집에 있던 책 15,000여권을 대전으로 입양 보냈다. 집과 사무실에는 아직 적어도 3만 권 이상의 책이 남아있긴 하지만 한때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좋은 일에 사용된다 하니 기쁜 마음으로 보냈다. 동생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 일을 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은퇴하면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책들을 모두 모아놓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말년을 보낸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어쩔 수 없이 일부는 강제로 밀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책이란 무엇일까? 나는 책을 애인 삼아 일하느라 가정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잘 성장해주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한 것도 책 때문일 것이다. 내가 추천해준 책은 없지만 책이 있는 환경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제 친구가 와서 큰딸이 쓴 책을 보고 싶다고 해서 겨우 찾아서 보여주었더니 하필이면 딸이 사인해준 책이었다. 책에는 “언제나 이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손자에게 쓴 편지를 모은 『네 편이 되어줄게』에는 작은딸의 추천사가 있다. 두 책을 본 친구는 자식들이 너무 잘 컸으니 너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평생 늘 책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펴내는 두 잡지가 책 관련 잡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는 9월 20일에 592호를 발송했고, 월간 <학교도서관저널>은 137호를 마감 중이다. 두 잡지를 합하면 729호다. 평생 두 잡지만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인생 또한 잘못 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단행본을 잡지 이상으로 펴냈으니 결코 후회되지 않는 인생을 산 셈이다.
내 인생만을 생각하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능력 이상으로 일을 너무 벌이기만 했다. 요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즐거운 인생을 구가하는 후배들이 부럽다. 내가 왜 저들처럼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될 때가 가끔 있다. 후배들에게는 모두 저들 나름의 후회가 있겠지만 하여큰 내가 나만의 전문성이 있는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지 못한 것은 내 한계였다.
호서대 설립자인 강석규 박사는 65세에 정년퇴직하면서 그냥 건강이나 잘 지키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95세가 되었다. 그는 그제야 깨닫고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에서 “30년을 더 살 줄 알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시작하려 합니다.” 이 글을 쓴 이후 그는 그때부터 103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내가 바로 올해 65세다. 나는 내가 파고들 한 분야의 책만은 입양 보내지 않았다. 나는 이제 강석규 박사의 충고대로 30년 인생을 새로 시작하려 한다. 나는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정리했다. 긴 세월이 훌쩍 집을 나간 것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월이 막 시작되었다. 비워진 서가에는 다시 새로운 책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내 인생이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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