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식

지난 6일 도교육청(민주시민교육과)을 경유하여 교육부고시에 대한 특례 마련과 학칙 개정 주문이 공문으로 통보되었다. 당일 오후 마침 교원전체연수 모임이 있었고 나는 연수말미에 15분 가량의 시간 할애를 요청하여 마이크를 쥐었다.

제정된 교육부고시 중 당장 우리 학교에 시급한 내용과 그 내용을 학칙에 담아 개정해야 하며, 학칙 개정 완료까지의 공백기간을 위한 특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교원이 역할을 갖고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호소했다.

49명의 교원(교장,교감 및 교사) 중 교육부 고시에 대해 정독하고 관심을 보인 사람은 내가 유일한 한 명임을 나중에 인지하게 되었다.

익일, 문서등록대장을 검색하다가 교무부장이 내부용으로 기안하여 문서로 등록된 특례 조치를 열람했다. 교육청에서 온 붙임물(학교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부의 붙임물을 교육청 또한 그대로 차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단지 기안문만 입힌 문서였다. 문서의 가치도 없는 내용을 우리 학교의 특례 조치로 운영하고자 한다는 허울뿐인 속임수 기안을 학교장은 공문서의 효력을 발하는 결재를 하고 말았다.

나는 내선전화로 학교장에게 이런 엉성한 기안문을 무슨 이유로 결재를 하셨는지 자초지정을 물었다. 도대체 붙임물을 확인하셨냐고 따졌다. 학교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재차 내가 항의를 하니 교감과 교무부장과 논의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결재권자는 교장님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역시 교감과 상의하라는 정형화하고 건조한 문장만 반복될 뿐이었다. 오후에 교감이 각 부장들에게 메신저를 띄워서 이틀 후 학칙 개정 전 특례방안 마련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 개최 통보를 알려왔다. 이틀 후 급조된 회의가 열렸다. 교장도 참석했다.

나는 이번 문서화한 우리 학교 특례 운영 방안이 교육부 내용물에 단지 포장지만 바꾼 기만술임을 문제 삼았다. 이것이 무슨 공문서냐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수업방해 분리 학생에 대한 공간 마련 및 지도인력에 대하여 내가 구상한 것을 부의해 안건으로 다루어줄 것을 요청했다. 지도인력은 교장과 교감이 우선 순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학교장은 침묵하고 교감이 나서서 학생 지도에 교장과 교감의 역할 거론에 대하여 제기한 내 제안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학교장과 교감은 학교전체일로 바빠서 그렇게 하기 곤란하다고 손사래를 쳤다.(교감님은 ‘학교장은 학교 전체일에 대한 구상과 고민, 출장 등으로 분주해서 학생지도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학교장위 심기 보좌에 나섰다. 억지지만 일관성있는 논리였다. (탁월한 대변인이 납신 셈이다.) 난 교감의 입장에 대해 즉각 반박하며 학교장, 교감 그리고 부족한 인력은 교육경력 순의 선임교사로 하면 된다고 했다. 나머지 부장교사들은 꿀먹은 벙어리를 작정하기로 한 듯 했다. 결국 아무의 지지나 동의도 얻지 못한 내 제안은 반영되지 못한 채 회의는 종료되었다(내가 종료한 것이 아니라 교감이 종료를 권하고 교무부장이 일방적으로 종료를 선언했다. 나머지 침묵하는 부장들은 그 동조자였다)

그 이후로도 나는 교내 전체 교사들에게 교육부고시를 이번 기회에 학칙에 제대로 담아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교사들 특유의 무관심과 무임승차 심리를 극복해야 한다고 몇 차례 메신저를 보냈다. 한명의 반응도 얻지를 못했다. 모기소리만큼의 메아리도, 실바람만큼의 흔들림도 감지할 수 없었다.

여전히 특례 방안 마련은 고사하고 학칙에 대한 논의 움직임도 전무하다. 그제 마지막으로 학칙 개정에 대해서(취지, 필요성, 논의 방법 등)설득형 메신저를 전송했다. 참담하게도 무반응이었다.

절망감이 몰려왔다. 순간 ‘사회적 전환기에서 소름끼치는 것은 적들의 공격과 아우성이 아니라 내 주위 다수의 침묵이었다’는 마르틴 루터 목사의 절규가 소환당해 무거운 납덩이처럼 나를 눌렀다.

밀려오는 절망감과 동료 교사들에 대한 원망만 짙은 안개처럼 내 뇌리에 두텁게 깔렸다. 연전연패(그것도 완패)를 당한 나는, 어제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심정을 교내 메신저로 전송했다. “향후, 교사의 기본권이니 교육권이니 하는 이야기로 당신들을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토록 중차대한 공동의 이익과 관심사를 내팽개치고 그저 사소한 업무(교무 일부, 행정업무, 학교사무 등)이야기 정도만 교류하면서 그것을 소통이라 착각하는 당신들의 무지와 방관심리를 애달픈 시선으로 바라본다” 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중 무려 절반을 훌쩍 넘기는 5일을 저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는 건 멘탈수련이 부족한 나에게 어쩌면 비극이 될 것이다.

덧 1) 학칙에 대해서 모르는 교사들이 있었다. 학칙을 풍문으로 들었을 뿐 그 내용을 한 번도 읽지 않은 교사들도 수두룩했다. 이런 동료들에게 언감생심 교육부 고시를 거론하며 의미있는 움직임을 기대한 내가 다름아닌 청산되어야 할 신종 적폐였다.

덧2) 어떤 학교들은 마치 심산유곡 또는 절해고도여서 외부의 변화가 전파되어 정착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학교의 담장은 철옹성 같아서 담장 밖의 진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동 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