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의 교육단상/ 한국교육의 이데올로기 7. 미국주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18 06:15 | 최종 수정 2023.09.18 06:29 의견 0

한국교육의 미국 편향성

우리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강고한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가 미국(중심)주의이다. 우리 교육체제는 오랫동안 이중의 식민성에 근거하고 있었다. 하나는 일본 식민지 교육의 잔재로 강력한 군대식 학교 문화의 형태로 남아 있고, 또 하나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지속적 영향력이다. 일제 군국주의의 영향은 해방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후 들어선 후진적인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의해서 강화되어 견고한 관료주의 학교 문화의 토양이 되었고, 그 토대 위에 미국의 교육사상과 교육제도로 신장개업한 건축물이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패망과 철수, 그리고 바로 이어 들어선 미군정 실시는 우리 입장에서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고 설계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국가설계를 다시 외세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해방 당시 우리는 나라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준비할 인적, 물적 조건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교육은 미군정의 교육 부문을 담당한 육군 대위(E.L.Lockard)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대위는 당시의 한국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국가의 교육행정을 경영할만한 경험이나 식견이 부족한 상태에 있었다. 미군정이 포고한 교육원칙 제1조의 ‘일제 식민지교육의 잔재 청산’의 원칙은 미국 지향적인 교육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었고 결국 미국식 교육을 한국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1. 일제 강점기의 학무국을 문교부로 승격시키는 등 중앙교육행정조직의 개편 2. 지방교육행정조직이 일반행정조직과 독립되는 교육자치제도의 도입 3. 6-3-3-4제의 단선형 학제 선택 4. 미국 대학을 모델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안을 비롯한 미국형 학교유형제도를 결정하는 등 현재의 학교교육제도와 유사한 교육제도를 확정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일의 철학이 지배적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미국과의 외교적 군사적 관계로 인하여 미국의 철학이 수용되었다. 생활교육, 아동중심교육, 교육을 통한 사회재건 등을 내세우는 존 듀이 사상의 영향으로 전체주의적 교육이 민주적 교육으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교육 내용적 측면에서도 영어교육이 강화되고, 생활중심 교육과정이 강조됨으로써 사회과목이 신설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육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일곱 차례의 교육과정의 변천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 국가 교육과정은 미국 교육사상사의 변화에 따라 초기 진보주의에서 후기 진보주의로, 지식의 구조와 개념학습을 강조하는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이어 인간중심 교육과정 등으로 변화하였다. 이렇게 우리 한국인의 교육적 자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미국교육은 제도적으로 사상적으로 도입되고 구체적인 교육과정으로 형성되어 우리의 정신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정치, 군사 분야에서 미국이 한국에 강압적인 방식으로 개입하였던 것과는 달리, 교육사상과 제도의 도입은 주로 인적 교류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해방 전에는 기독교 학교의 선교사들과 유학생들에 의해서 미국의 신문물이 개별적으로 전파되는 수준이었다면, 해방 후에는 미국인과 일부 선교사들이 문교부의 미군 고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문교부의 각종 계획과 실행에 대한 자문, 재무 행정에 대한 자문, 교육계 인사들의 접촉에 대한 자문을 포함하여, 한국교육을 개선하고 미국의 민주적 교육을 소개하기 위하여 미국 교육모델에 따라 한국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하였다. 미국인들의 한국교육에 대한 개입은 개인 차원을 떠나, <대한교육조사단>, <UNKRA>, <교육사절단> 등은 한국에 체류하면서 교사들을 미국적으로 재교육하거나, 연구 활동이나 각종 계획사업을 지원하거나 원조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교육 원조는 처음에는 주로 학교시설의 복구와 물자의 공급에 집중되었으나, 점차 훈련, 연구기관 설립 등 기술원조로 진화해 갔다.

교육 인적 교류는 미국 교육자들의 방문 지도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미국 유학의 장려로 미국 지향적 한국인 집단 증가로 이어졌다. 각종 미국 교육사절단이 한국의 젊은 교육학도들을 미국 유학의 길을 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전쟁잉여금을 이용하여 교육 교환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 주었다. 한국의 고등교육을 증진 시키고자 설립된 한미교육재단과 미국 정부 초청, 한국 정부 장학생, 종교단체, 기타 사립 장학재단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 유학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학생 총수의 80% 이상이, 정부 장학생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 유학생이며, 대학의 외국 학위 교수 대부분이 미국 학위이고 교육학 교수의 경우 미국 학위의 비율은 이보다 더 높았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교수들과 이들이 돌아와서 한국에서 양성한 제자 교수들에 의한 대학교육과 교사교육과 교육연구 등의 독점 현상은 가히 미국의 교육지배라고 불릴만한 것들이었다. 경제 발전으로 오늘날에는 미국 유학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그 영향은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교육은 미국인이 이식한 교육제도라는 구조 속에서 미국인의 교육사상과 이론으로 미국에서 직간접적으로 교육받은 학자집단과 관료집단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교육 속에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할 수 있는가, 구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구별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거가 필요한가, 구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러한 한국교육에 대한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가 80년대 이후부터 우리 교육학계에 의문으로 던져지고 있다. 우리 교육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당시에는 우리가 세계의 주변부에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가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고 순기능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신분을 배격하고 자유에 기반하여 개인차를 인정하여 개성을 살리는 교육을 하여 개인과 사회의 삶의 질적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경제성장론과 발전교육론을 신봉하는 한국인 다수의 입장이다. 둘째, 우리 교육에 대한 미국의 영향이 자본주의 국가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한 단면으로 우리 교육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한국인의 문화 수용의 맹목성과, 교육학자들의 탐구행위의 종속성과 무비판성에 대한 비판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 제국주의적 관점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면, 강대국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과 학문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것은 국가의 미래 좌표 설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현실적으로 미국의 교육 문제와 한국의 교육 문제가 같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교육이론으로 한국의 교육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즉 미국 교육이론의 한국적 적합성을 따지고, 우리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적인 학문적 방법론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의 어느 입장도 한국교육이 미국 의존적이고 편향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미국 사회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모델로 추구하고 달려갔는데 미국적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전이되어 감당할 수 없는 불평등한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 해방 직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자본주의가 심화 이행됨으로써 미국과 유사한 사회적, 교육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늘을 다 덮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의 우산으로는 가릴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우리를 해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친미, 반미라는 단순 개념을 넘어 우리의 눈으로 세계와 우리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제 와서야 우리는 버려야 할 과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전통의 우물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들어 지금까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일이나, 덴마크나 핀란드, 스웨덴 등의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의 교육모델을 탐색하기 위한 발걸음들이 바빠지고 있다. 교육과 교회와 전쟁에 의해서 형성된 마음으로 모인 소위 ‘태극기 애국시민’들의 성조기 행렬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주필 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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