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수년 전 가천대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고3 담임 대상의 전국 대학 입시 설명회였다. 넓은 강의실 몇 개를 원격으로 연결해서 일전에 말한 ‘수박대가’ 행사보다 훨씬 쾌적하게 진행되었다. 참석한 선생님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그 행사 시작에 총장인 이길여 박사가 몸소 연단에 섰다. 당시에도 여든이 넘는 나이였다. 패배를 모를 것 같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카리스마. 처음엔 그 정도 생각으로 가볍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인사말은 의외로 진솔한 울림이 있었다. 자신의 학창 시절만 해도 여학생이 의사가 되는 걸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던 고마운 분은 학교 담임 선생님이셨다고 하며 지금도 선생님들이 안 계셨더라면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는 소회를 얘기했다. 덧붙여 선생님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좋은 학생들을 보내주면 정성껏 지도하겠다는 다짐까지. 그동안 들은 여러 대학 관리자의 인사말이나 축사 중에 그녀의 인사말이 당시 나에겐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그만한 학교 홍보가 어디 있을까 싶다.
해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로에 도움을 줄 만한 멘토를 선정해서 가상 인터뷰를 작성해 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책과 인터넷을 찾으며 자신의 멘토로 삼을 만한 유명인 또는 일반인들을 정하고 거기에 아이디어를 넣어 가상의 인터뷰를 대화체로 작성한다. ‘언제 이 일을 하리라 결심했나요?’,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등의 질문을 인터뷰에 활용한다. 마치 실제로 자신의 멘토를 만난 듯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처럼 한 분의 멘토를 정해서 그분의 일생을 그려보려 한다. 바로 가천대 총장 이길여 여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총장님.’, ‘중학교 진로 선생님을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가천대는 가천 의과 대학이 경원대를 인수하면서 출범한 2012년부터 모 일간지 대학평가에 무려 44단계나 오르며 높은 성장을 이룬 학교입니다. 실제로 진학지도를 하면서 학생들이나 현장에서 느끼는 학교의 위상이 해마다 높아지는 느낌인데요. 기업체나 여타 지원 없이 병원 재단으로 만든 대학으로 이 정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저의 사업을 걱정하고 무모하다고까지 했지만, 사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방법으로는 좋은 인재들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봤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운영했더니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저는 병원에서나 학교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요구하는 게 있으면 비용이 고민되어도 진행시키는 편입니다. 그런 투자가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의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던데요.’
‘초창기에는 제 사무실에 학생들 사진을 다 붙여놓고 이름을 외웠어요. 우리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뽑을 때 면접을 직접 하기도 했고요. 그때 강조한 건 나와 함께하면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학비를 도와달라고 모르는 학생이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죠? 그때 알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쾌히 학비를 지원해 주셨다는데?’
‘그때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했고, 그 학생이 지금 우리 병원에서 심장 전문의로 활약하고 있어요. 저는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으니까, 제자들이 자식 같은 마음에 돕고 싶을 뿐이죠.’
‘인생의 시련기는 언제였나요? 자라나는 중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은요?’
‘저는 둘째 딸로 말도 느렸고 해서 천덕꾸러기였어요. 그런데 말문이 트이고 나서 자신감을 얻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이루려고 하는 욕심이 많아졌죠.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집안이 어려웠을 때도 굽힘 없이 열심히 생활했던 것도 그런 적극성에서 가능했다고 봐요. 산부인과를 할 때는 너무 바빠서 결혼할 기회도 놓쳤고 미국과 일본 유학을 다녀올 때도 매번 상황이 안 좋았지만 역시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죠. 우리 학생들도 혹시 집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고 구박을 받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절대 좌절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리고 여자로서 겪었던 많은 편견과 시련이 있었지만 모두 극복한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 때문에 움츠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증금 없는 병원,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진료하신 일화가 유명한데요. 소개 좀 부탁합니다.’
‘초창기 산부인과 진료를 할 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 형편이 어려우니까 병원비를 떼일까 봐 보증금을 받았는데 저는 그런 거 없이 편하게 진료받으라고 선언했어요. 그래서 환자들이 많이 왔죠. 임신한 여성은 차가운 청진기를 대면 놀랠 수 있으니까 늘 제 가슴에 품고 따뜻하게 해서 진료를 봤어요. 환자들이 많아서 병원에 있는 제 방에서까지 함께 재우곤 했죠. 다 아련한 추억이에요.’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꿈을 가진 중학생 여러분, 뇌과학 분야 연구에 특화된 가천 의과 대학이나 한의대 그리고 다양한 첨단 공학 분야에서 많은 장학 제도와 경쟁력을 갖춘 가천대로 오세요. 멋진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올봄 가천대 축제에서는 91세인 그녀의 강남스타일 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호인 아름다운(嘉) 샘(泉)과 같이 오랫동안 기억될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이 가상 인터뷰의 내용은 「MBC다큐멘터리 ‘성공시대’ : 이길여의 네 가지 성공비결」과 「나무위키」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