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공사를 마치자 단열재와 전선을 정리하고 그 위에 합판과 석고보드를 치는 내장공사를 시작하였다. 내장공사가 완료되면 벽과 천장이 다 가려지기 때문에 공사가 마무리하기 전에 집을 짓는 가족들의 바람을 적을 수 있는 상량판을 미리 받았고 상량판을 천장에 두는 것으로 상량식을 대신하기로 했다.
전통적으로 집을 짓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 성대한 행사가 상량식이다. 상량식은 목조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상량을 올리고 거기에 집에 대한 기록과 축원이 담긴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으로, 집에 살 사람과 마을 사람들이 축원과 축하의 의미를 함께 가지는 의식이다. 보통 상량문의 양 끝에는 용龍자와 구龜자를 써서 번성과 장수의 의미를 새기고, 돼지 머리 앞에서 절을 하면서 집에서 살 사람들의 건강과 번성을 빈다. 마을 사람들과 떡과 음식을 함께 나누고 공사한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마침 집에 놀러 온 딸네 식구에게 돌아가며 글을 하나씩 써보도록 한다. 손녀 이현이는 집을 그리고 식구들을 그린다. 이쪽에 두 명, 저쪽에 세 명, 떨어져서 한 명을 그린다. 실생활에서의 거리가 그림에도 반영되어 있다. 주름살 있는 사람 두 명, 제 식구 3명,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삼촌 한 명이 대상이다. 제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씨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다.
딸 : "건강하고 안전한 집이 되게 해 주세요. 부모님의 노년과 이현이의 유년이 함께 즐거운 기억으로 쌓일 것을 기대합니다" 사위 :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집. 2022년 12월 17일"
아이들이 쓰고 남은 공간에 며칠 후 아내는 성경의 구절을 썼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 32절). 멀리 있는 아들에게 남길 글을 보내라고 했는데, "알았어" 하더니 오지 않아 "알았어"라고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며칠 전에 썼던 시 한 편을 옮겨 적었다. 제목은 양생. 시멘트가 양생이 되고, 집이 양생이 되고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양생하는 마음을 담았다. 딸이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며>라는 시를 지어 바쳤는데, 내 집에는 이 시를 지어 바친 것으로 한다.
보잘것없는 모래알들이 시멘트를 만나 굳어
떠억 하니 잘 생긴 집 한 채 받쳐 줄 때까지
물은 속에서 오랫동안 긴 숨을 참았을 것이다
마치 시퍼런 땡감이 바알간 홍시가 될 때까지
그래서 떫은맛이 익은 단맛으로 풀어질 때까지
햇빛과 바람과 비가 오래 기다리고 단련시켰듯이
젖도 빨지 못하는 붉은 아기가 어른이 되고
들개 같은 야생이 균형 잡힌 인간이 되기까지
수많은 한숨과 눈물과 참음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어리석은 인간들이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집에 사는 이들이 서로 익어 양생養生이 되어야
집은 진정 생명을 담는 그릇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상량식은 생략하고 조용히 상량판을 집 천장 아래 고정시켰다. 돼지머리 고사 대신, 일하는 목수팀 전체를 불러 감사의 말씀과 약간의 금일봉을 드리고 저녁에 회식을 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