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귀촌/농민 기본소득 제도에 대하여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6.04 08:45 의견 0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농업소득만으로는 살기 어려운 독일 농부(나아가 EU)를 살리는 것은 직불금 제도라는 얘기를 읽으면서 농업직불금이라는 것에 대해 좀 자세하게 살펴본다. 농업직불금은 말 그대로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로 좁게는 가격 인하에 대한 보상을, 넓게는 농업,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협의의 의미를 최소한으로, 독일과 EU는 광의의 의미의 기능을 기본소득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과다, 노동, 노동 의사에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기초적인 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나온 ‘인간적이고 동시에 사회적인 개념’이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개념은 앙드레 고르에게 나온 것이지만, 이런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16세기 초부터, 비베스, 몽테스키외, 토마스 페인 등의 사상에서 나왔고, 그 뒤에도, 샤를 푸리에, 존 스튜어트 밀, 러셀 등에 의해서 이어졌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까지도 최저생계비 이하의 노동소득에 대해 차액만큼 현금으로 보전해 주는 가장 소극적인 기본소득 제도 모델인 ‘마이너스 소득제’를 주장했고, 닉슨 정부에서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10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구성되어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연령별 차등지급을 내용으로 하는 한국형 기본소득 모형이 소개되고, 2014년 농민 또는 농촌 주민을 한 충남형 기본소득 모델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재원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에서 찾고 있다.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불평등의 후과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논쟁적인 주제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첨예한 문제는 1.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2. 누구에게 얼마씩 줄 것인가. 3. 이 제도가 우리 사회적 제도와 기풍의 핵심인 자본주의에 맞는 것인가가 아닐까 한다.

모든 제도가, 더욱이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제도가 하루아침에 도입되는 것에는 반발과 불안이 있을 수 있다. 충격이 덜한 방식으로, 가장 시급한 영역부터 점진적으로 도입해 보는 것을 제안해 본다. 소멸의 결과가 국민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끔찍하게 올 농촌, 농민에게 먼저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을 연구자 정기석의 제안을 소개한다. 첫 단계로, 18-50세의 청장년 10만 명에게 5년 이상 150만 원씩 월급을 지급하는 ‘청년 공익 영농 요원제’를 도입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영세농 기초생활 연금제’, ‘고령농 기초생활연금제도’를 고려한다. 본격적인 단계로, 전 농민을 대상으로 ‘공익 농민 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 대안 없이 주장만 한다고? 그럴 리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정기석,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삶창. 농민 기본소득은 유럽에서는 대부분 실시되고 있고 가까이 일본에서도 '농업차세대인재투자사업(청년취농급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종호 글. 사진.


우리 먹거리를 외국 농부에게 맡길 수는 없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친 듯 오르는 곡물 값을 체험하지 않았는가? 신뢰, 협동, 연대의 사회적 자본으로 우리 국민이 우리 농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불쌍한 농민을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우리 모두와 우리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가족끼리 농사짓고 짓던 농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독일과 같은 가족농이거나, 카길, 듀퐁, 몬산토 같은 걸 내세우는 미국식 기업농도 아니고, 손바닥만 한 좁은 땅에 노동집약적 농업을 하며 겨우 내 노동 품삯으로 먹고사는 영세 농업인데 기본소득제 말고 농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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