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수 시인의 <시 한 편, 숨 한 번>/‘때에 그침[其已]’의 윤리를 생각한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6.03 10:27 의견 0

배고픔의 뒷면
- 이장근

약육강식의 세계
동물의 왕국
그들에게는 약자보호 시스템이 있다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는 것
내일의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는 그들은
저축에 투자하지 않는다
오직 배고픔에 투자할 뿐
몸뚱어리를 걸고 언제나 올인한다
인정사정없이
사냥감 중에서 가장 약한 놈을 골라
숨통을 끊어놓는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약자를 뜯어 먹는 장면이
잔인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배고픔의 뒷면, 배부름이 살려놓은
약자들이 약자를 낳고 기르는
동물의 왕국에는
강자퇴출 시스템이 있다
약자의 수를 초과할 수 없는
강자의 개체 수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부름이 배고픔을
앞지르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는 닫힌 본능체계의 사회입니다. 이 세계에는 중요한 두 개의 자연법이 작동합니다. 첫째가 “약자보호 시스템”입니다. 닫힌 본능체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하위 먹이사슬로부터 먹이를 구하지만,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세계의 자연함의 법입니다. 그래서 상위 먹이사슬이 배부른 동안, 그 “배부름이 살려놓은/ 약자들이 약자를 낳고 기르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인이 보기에 그것이 “약자보호 시스템”입니다. 비록 배고픔으로 하여 목숨을 걸고 사냥하는 모습이 비위가 상할 정도로 ‘동물적’이기는 하지만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는” 체계입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문명은 지독히 반자연적이고 반동물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축에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배부름이 배고픔을” 앞질러 가상의 배고픔을 불러들여 그에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행위는 가상을 실재화한 것이기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자기 증식의 이해만 좇는 자본은 ‘돈은 잠들지 않는다’는 경구처럼 활동합니다. 그렇기에 동물의 세계가 “몸뚱어리를 걸고 언제나 올인한다/ 인정사정없이/ 사냥감 중에서 가장 약한 놈을 골라/ 숨통을 끊어놓는다/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약자를 뜯어 먹는 장면이/ 잔인하게 묘사”되기는 하지만 이는 잔인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가 “강자퇴출 시스템”입니다. 닫힌 본능체계의 사회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약자의 수를 초과할 수 없는/ 강자의 개체 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순록과 이리의 관계에서 이리는 포식자입니다. 순록이 많아지면 먹잇감이 풍부하여 이리의 개체수도 불어납니다. 하지만 이리의 개체수가 불어나면 먹잇감이 모자랄 수밖에 없기에 이리의 개체수도 자동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강자와 약자 사이에 자동조절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시인은 그것을 “강자퇴출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자라고 하여 무한히 먹어치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히 먹어치우는 것이 결국 자기를 먹어치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인간 지능이 발전시킨 문명은 ‘잉여-배부름’을 추구하며, 자본은 자기 이익 증식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만 잠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에 봉사하는 인간도 잠들지 못하고 물질적 가치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실제로 초국적 자본이 지구를 떠돌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약육강식의 세계/ 동물의 왕국”은 더없이 순박한 세계입니다.


이렇게 인간사회는 건강한 자연계가 가지고 있는 “약자보호 시스템”과 “강자퇴출 시스템”이라는 브레이크가 고장 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도 점점 커져 온 것입니다. ‘가지고서도 채우려는 것’(持而盈之), ‘헤아려서 생각을 날카롭게만 하는 것’(揣而銳之), ‘금과 옥을 집안에 가득 쌓아두려는 것’(金玉萬堂), ‘돈 많고 지위가 높다고 교만해지는 것’(富貴而驕)도 그 결과입니다(『도덕경』 9장).

그렇다면 이런 욕심을 막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건강한 자연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제동장치를 관계적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인간이기에 자연적 본능으로 회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침을 알아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功遂身退)’은 가능합니다. 그런 노력 속에서 이기적 지능에 가려 있던 자연적 본성을 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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