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의 교육단상/온정적 합리주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29 08:59 의견 0

봄이 올 때마다 죽은 듯한 나무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발밑의 맨땅에서 새싹들이 군대처럼 몰려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자유로自由路의 가로수들이 무뚝뚝한 무채색無彩色을 버리고 연두의 물빛으로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꽃과 새싹과 물오름에 넋을 빼앗기다가도 저 현상現象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 또는 원리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신의 섭리나 이데아idea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발아와 개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또는 바깥에서 만나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기적 같은 존재이지만,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 어떤 사람이 될지, 이 ‘사람의 길’도 알 수 없는 신비한 과정입니다. 꽃이나 풀 같은 것들의 발아 과정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라는 조건이 필요하듯이,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에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한데 그중의 하나가 교사, 그중에서도 교사의 온정적 합리주의라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온정적 합리주의(compassionate rationalism)는 말 그대로 합리주의를 근간으로 해서 온정주의를 갖춘 태도를 말합니다. 합리주의는 생각과 원리를 밝히되, 차가워서 사람이 붙지 않을 수 있고, 온정주의는 사람은 따르지만 길 찾기를 방해할 수도, 간신히 찾은 길을 잃을 수 있게도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온정적 합리주의 리더의 삶 속에는 성찰과 몰입, 선택과 수용, 도전과 학습, 위기 극복과 성장, 실천과 재도전의 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과 학생의 삶을 소중하게 느끼는 인본주의의 실천, 타인의 성장을 위한 자기성찰과 자기계발에의 헌신, 새롭게 거듭남(born-again)의 실천, 개별적 개인의 존재가치와 특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맞춤식 리더십 실천 등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일을 통하여 자신의 생계를 도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의 삶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끼니’를 해결합니다. 전문가와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지는 것이 교직의 특성입니다. 선생님의 한숨과 눈물과 고민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선생님 머리의 이성 작용에 의해서 아이들은 삶의 방향을 찾아갈 것입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 반 단체 카톡에 사진 한 장을 올리셨다// “좁은 틈에서도 끈질기게, 작아도 당당한 제비꽃처럼”/ 메시지와 함께// 학교 진입로 아스콘 바닥 갈라진 틈/ 나란히 핀 제비꽃 몇 송이 찍어 오셨단다// 집에 가는 길에 반드시 그 자리를 찾아서/ 유심히 보고 가라는 게 종례 사항이다// 외톨이 진욱이가 제비꽃 앞에서 오래 서 있던 것을/ 나는 보았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엄마 아빠 얼굴도 모른다는// 진욱이는 알고 있었을까/ 선생님이 창문가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복효근, 제비꽃 종례>

-졸저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다>에서

전종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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