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교육 코너“Shool of COSMOS”/소영이 이야기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26 10:23 | 최종 수정 2023.05.26 10:29 의견 0

놀토(일명 격주로 쉬는 토요일)가 있었던 해의 기억이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우리 학교만 쉬는 날이었다. 나는 여유 있게 늦잠을 자고 일을 보러 밖에 나왔다. 마침 하교 시간이 겹쳐 집주변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하얀 봄날의 토요일, 새털 같은 아이들이 햇살을 맞으며 주말 하교의 기쁨을 발산하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 모여있었다. 그 모습은 어떤 그림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였다. 그때 학교에 근무하는 입장에서 새삼스레 학교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다. ‘아! 저 아이들이 방금 전 까지도 학교에 있었겠구나!’ 학교의 의미가 달리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신도시의 학원가가 밀집된 주변에 있다. 교육열이 높아 학생과 학부모들은 입시와 진학에 관심이 높다. 나는 이곳에서 진로상담을 전담으로 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요즘은 진로상담 교사가 학교마다 한 명씩 배치되어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을 상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진로상담이라고 담임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을 결정하면서가 전부였던 예전을 떠올리면 많이 달라진 환경이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진로 수업을 통해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파악하고 다양한 현대 직업과 진로를 배운다. 그리고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나와 같은 상담 교사를 찾아 함께 해결책을 찾곤 한다.

주위에 학원가가 밀집해 있고 교육열이 높은 우리 학교의 경우엔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보다는 진학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즉 어떻게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느냐와 성적을 올릴 수 있느냐가 큰 걱정거리다. 이는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학생들 스스로도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갖게 하는 원인이다. 학업에 부담이 큰 아이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학원 숙제를 펴 놓는 일이 가끔 있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 되면 학원에서 준비해 준 교재들로 학교 시험을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교 후에도 길게는 저녁 10시경까지 학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도시 학생들의 이런 환경 속에서 학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이 될 때가 많다.

소영이 이야기

소영(가명)이는 씩씩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상담하는 동안 수줍고 말수가 적었다. 꿈을 정하기가 어렵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궁금증으로 상담을 신청했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면서도 오랜 기간 특공무술을 연마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군보다는 다소 현실적이면서도 소박한 직업들을 희망하고 있었다. 사전에 검사(홀랜드 직업 흥미 검사)한 흥미 유형을 보니 높은 사회성과 함께 창의적이면서도 진취적인 분야를 좋아하는 성향이 강했다(사회형, 예술형, 진취형 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소극적이긴 싫으며 개방적이고 독창적인 모습을 좋아하리라고 예상해서 그렇지 않냐고 물었더니 다니는 무술학원에서 동생들을 돌보고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학급 회장 등 학교에서 무언가 앞장서서 하는 역할은 아직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한 책임감이 오히려 아이를 억누르는 것 같았다. 적성검사지의 일부 문항을 함께 풀면서 잠시 놀랐다. 사실 중학생 대상의 적성검사 문제는 성인들이 풀 때도 만만치 않은 수준인 게 꽤 있다. 소영이는 빠르게 정답을 말했다. ‘공부하면서 잘 이해가 안 가거나 답답한 적은 없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더 깊은 사연이 있을까?

가족 사항을 물으니 오빠가 하나 있었다. 현재 미대에 가기 위해 준비 중이고 공부를 다소 등한시하면서도 자신감만 크다고 하며 미덥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맏이인 오빠에게 불만인 나머지 오히려 본인이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하버드 입학생도 맏이가 가장 높은 비율일 정도로 맏이들이 느끼는 책임감이 크다던데 그 짐을 오히려 중학생인 막내딸이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건강한 마음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소영이는 선생님이 보기에 조금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임원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보고 꿈도 조금은 크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될 것 같은데.’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단지 칭찬일 텐데 몇 가지 근거를 든 것만으로도 흔한 아첨은 아닌 느낌이다. 아이와 파이팅하며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몇 주 뒤 복도에서 만나 안부를 물었다. 역시 자신감을 갖고 잘 지내라고 격려했다.

학교가 더는 필요 없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입시만을 위한 병폐로,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고, 첨단 원격 교육과 인공지능에 밀려 더 이상 학교와 공교육이 의미가 있겠냐는 소리다. 그러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요란하지 않지만, 학교 안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경쟁 속에 지친 아이들을 돌보는 위로와 격려가 행해지고 있다. 세상의 거친 바람을 막아주고 힘 있게 아이들이 자라도록 돕는 우리 공동체 안 소중한 보금자리, 학교는 그런 곳이고 또 그런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언젠가 놀토에 보았던 풍경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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