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수 시인의 <시 한 편, 숨 한 번>/ 생명에 대한 생명적 믿음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25 09:28 | 최종 수정 2023.05.25 09:50 의견 1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 이병승

어제는 하루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실천문학사)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생명력의 강약으로 출렁이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강할 때는 생명적 기쁨을 누리고 생명력이 떨어질 때는 일종의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자체적으로 이런 생명적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인 우리는 그 까닭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이 이미 그 생명적 리듬 안에서 생겨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리듬에 따라 자기를 표출합니다.

시인은 그 리듬의 표출을 다음처럼 말합니다.

생명의 힘이 약해질 때, “어제는 하루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생명적 힘이 차오를 때, “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그리고 까닭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리듬은 이어지고, 이어지기 때문에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이 리듬이 깨지는 것이 생물학적 죽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그 리듬만 무난하면 생명은 온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생명인 한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그 리듬을 타려고 합니다.

그런 삶에 대한 생명적 이해를 다음처럼 말합니다.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적 힘이 차오를 때와 약해질 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나누어 생각할수록 그 둘은 다른 세계가 됩니다. 마치 하나는 생을 이야기하고 하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둘은 한 생명 안에서의 생명적 리듬일 뿐입니다. 이중적인 것입니다. 이 리듬을 무난하게 잘 탈 때 건강한 생명입니다.

시인은 이런 생명 세계에 묻혀 있는 원리를 감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이것이 생명적 구조의 건강함입니다. 마치 밥 먹고 소화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못 느끼는 것이 건강함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만약 까닭에 대한 추측이 떠오르기 시작한다면 오히려 그 생명에게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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