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 교수의 노자 이야기/발굴된 『노자』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24 07:42 의견 0

현재까지 발굴된 『노자』 이야기를 해보자. 무덤 등에서 발굴된 『노자』 는 지금까지 6종에 해당한다. 발굴된 『노자』 들의 시대는 전국시대의 것이거나 한나라 초기이거나 중기 시기의 것임이 밝혀졌다. 6종의 발굴 유물은 전국시대의 판본이라고 알려진 곽점초간본 『노자』 갑, 을, 병(3종)과 전한 초기의 것이라고 밝혀진 마왕퇴백서 『노자』 갑, 을(2종), 전한 중기의 것이라고 밝혀진 북대한간본 『노자』(1종)이다.

郭店楚簡本 『老子』 甲, 乙, 丙---------전국시대

馬王堆帛書 『老子』 甲, 乙 ------------전한 초기

北大漢簡本 『老子』 ------------------전한 중기(북경대학이 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북대한간본이라고 부른다.)

이들 발굴된 『노자』들에서 첫째로, 분량의 문제를 살펴보자. 곽점초간본은 현행 통용되는 『노자』의 분량에 1/3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이 판본을 제외한 나머지 『老子』 들은 현재 통용되는 『노자』의 분량과 같다.

둘째로, 체제 그러니까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를 살펴보면, 발굴된 유물들은 모두 덕경(德經)-도경(道經)의 체제를 따른다. 앞에서 『노자』를 ‘도덕상하편(道德上下篇)’이라고 불렸다고 언급했었는데, 발굴된 『노자』의 체제는 덕경(德經)이 먼저 나오고, 도경(道經)이 뒤에 나오는 체제이다. 따라서 ‘덕도상하편(德道上下篇)’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럼에도 ‘도덕상하편(道德上下篇)’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와 덕이라는 용어가 갖는 위계의 문제, 즉 도라는 용어가 덕이라는 용어보다 개념적으로 우위에 있기에 ‘도덕상하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현행 『도덕경』의 체제와 다르다. 현행 『도덕경』은 도경이 먼저 나오고 덕경이 뒤에 나오는 체제로 되어 있다. 이는 도와 덕의 개념적 위계에 따라 체제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는 서체의 문제이다. 중국의 한자는 장구한 시기를 지나며, 그 서체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상나라의 갑골이 주나라의 금문으로 변화하고, 금문은 다시 대전체(大篆體)로 변화한다. 전국시기에는 각 지역에 따라 서체가 다 달랐다. 곽점초간본이 초나라의 서체인 것을 보아도 전국시기에는 지역에 따라 서체가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고 편 정책 중에 하나가 ‘서문동(書文同)’일 정도로 서체와 문장 구조를 통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진시황에 의해 통일된 서체가 대전체를 변화시킨 소전체(小篆體)였다. 이 소전체도 진나라와 한나라 교체기에 예서체(隸書體)로 바뀌게 된다. 한나라 이후 서체는 예서체(隸書體)를 기본으로 하였다. 물론 예서체 이후 초서(草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등으로 서체가 다양해졌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한자의 서체는 기본적으로 예서체에 근거한 것이다.

발굴된 『노자』들에서 곽점초간본은 초나라의 서체인 초서로 쓰여졌고, 나머지 판본들은 모두 예서체로 쓰여졌다. 이 말은 마왕퇴본이나 북대한간본의 『노자』는 쓰여진 시기가 진나라 말기이거나 한나라 초기의 것임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발굴된 『노자』들의 일반적 사항을 정리하고 나서 드는 의문들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첫째, 곽점초간본을 두고 던질 수 있는 의문이다. 만약 곽점초간본 『노자』는 그 분량상 1/3에 지나지 않으므로, ‘『노자』의 발췌본인가’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책의 내용을 일부분 가져와서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것을 발췌라고 하듯이, 곽점초간본은 『노자』에서 발췌한 사람이 중요하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을 발췌한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이 질문에 정답은 알 수 없다. 둘째, 곽점초간본이 ‘완전본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현행 『노자』의 1/3에 지나지 않은 분량이지만 완전본일 수도 있다. 만약 곽점초간본이 완전본이라면, 초나라의 누군가가 『노자』를 작성했고, 이 『노자』를 진나라와 한나라 초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에 누군가가 증보하여 현행 『노자』를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초나라 곽점 지역에서 『노자』가 탄생한 것일까. 초나라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노자』가 탄생하고 초나라에까지 전파된 것일 수 없을까. 이 질문은 초나라 언어 혹은 서체가 『노자』 사상과 일정한 연관이 있는가. 초나라의 언어가 『노자』에 영향을 미쳤는가 등의 문제와 관련지어 탐구되어야 한다. 넷째, 『노자』는 시어(詩語)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운(韻)을 맞추어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다. 운을 맞추어 글을 쓰는 것은 고대의 서책을 서술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기록할 도구가 적절하지 않을 경우, 암기의 편리성을 위해 운자를 맞추어 서책을 작성하였다. 그래서 중국 음운학에서는 『노자』가 운서(韻書)이므로, 상고시대에 쓰여진 책일 수 있다고도 한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일본의 이케다 도모히사(池田知久)는 곽점초간본에 대해, 완성본이 아니라 형성 과정 중에 있는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케다의 말은 일면 타당할 수 있다. 중국의 고전 들 중에는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장자』라든지 『주역』이 대표적이다. 『장자』는 장주(莊周)라는 전국말기 인물에 의해 「내편」이 쓰여지고, 장주의 사상을 이은 후학들이 「외편」, 「잡편」을 작성하여 책으로 만들어진다. 『주역』도 마찬가지이다. 『주역』의 경문도 지난한 세월에 걸쳐서 완성되지만 십익(十翼)은 전국시기에서부터 한나라 초기에 완성된다. 이처럼 중국 고전에는 여러 시대를 걸쳐서 한 권의 책으로 형성되는 사례가 많으므로, 이케다의 말은 생각할 만하다.

중국의 학자 중에는 『노자』가 운서(韻書)이므로 『시경(詩經)』처럼 오래된 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주장은 북송시기 주희(朱熹)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주희는 음운학에 조예가 있었다. 주희는 『노자』가 운을 맞추어 쓰여진 책이라는 점에서 춘추시기의 쓰여진 것으로 인정했다. 이 논리에 따라 『노자』는 춘추시대에 쓰여졌고, 전국시대 곽점초간본은 춘추시대 『노자』 완성본의 내용 중에 일부를 발췌한 판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자라는 인물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듯이, 『노자』라는 책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합의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자』 본문의 내용에서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추측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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