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증언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18 15:25 의견 0

5월의 증언

전종호

나 말은 두서가 없응께 용서허씨요

말을 잘할 만큼 배우지도 못혔고

이런 엄청난 일을 겪음시롱도

그날그날 적어 놀 생각도 못혀서

기억하는 말들이 뒤죽박죽잉께~

더구나 백주 대낮에 이런 말들을 할 날이

올 줄 내가 어치코 알았겄어요

5·18 때 우리 아들놈이 밤에 안 들어와서

다음 날 도청에 가봤어라~

창근이가 죽었는데 나 혼자

집에 갈 수는 없어라 하는디

친구 땜시 못 간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녀서

그냥 돌아왔는디 다음 날 도청에 가보니

아이가 보이질 않더랑께요

가슴이 무너지고 참으로 기막히오

암데를 돌아 댕겨도 아들을 찾을 수 없는디

재학이 비슷한 아가 망월동에 묻혔다는데

누가 가볼라요 해서 가봤지요.

죽기 살기로 싸워서 묘를 겨우 파 봤는디

우리 아들 재학이가 맞드랑께요

관도 수의도 없이 비닐에 싸여

목 따로 몸 따로 기가 탁 맥혀요

지금 생각해도 제일 가슴 아픈 것이 그거시요

이 좋은 세상 한 번 제대로 살아보도 못허고

비닐 수의가 뭐시당가요

5·18 당시도 힘들었지만

그 이후가 더 살기 힘들었지라

진상규명하라고 쫓아다닐라고 해도

전경 애들이 집을 지키고 있지

형사 놈들이 집 안에 죽치고 앉아 있지

높은 사람들이 광주에 오면

아예 차에 실어부러 다른 지역에 델꼬 가서

하루 죙일 강제 소풍시키고 그랬지라

자식 잃은 부모에게 더 기막힌 게 있었어라

언젠가 교황인가 머신가 한국을 방문 안혔소

오면 교황이 망월동을 방문할 걸 알고

아예 뫼똥을 없앨라고 했당께요

천만 원씩이나 줌시롱 회유 공작을 혔지요

이장 안 하면 불도자로 확 밀어붙일팅게

밀어불면 그나마 뼈도 못 추린다고 이장하라고

협박도 하고 꼬시기도 하고 그랬지라

그래서 26기가 이장을 했어라

그걸 밤마다 몇몇이 묘지에서 자면서 지켰지라

부모가 짜잔해서 자식도 간수허덜 못하고

자식 죽인 부모라고 손가락질도 당하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모질고 기막히요

그게 젤 가슴이 맺히고 한스럽지라

선상님들이 가르치는 아이들한테

우리 아들 헛되이 죽지 않았다 가르쳐 주시면

이 짜잔한 에미 애비 지금 죽어도 한이 없겄소

<5·18 사망자 문재학의 부모 김길자 문건영의 구술 증언>

<꽃핀 자리에서 햇살 같은 탄성이>에서

1980. 5월 광주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