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주필의 교육단상/어른들은 왜 키를 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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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15 07:02 의견 0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이 없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성장에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이나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수시로 키를 쟀습니다. 집집마다 아이들의 키를 재고 눈금을 표시하는 벽보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아이들 키가 조금씩 자라고 표시하는 눈금이 조금씩 높아질 때마다 박수치며 기뻐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기 아이들의 키를 재는 그 벽보에 이제는 손자 손녀의 키를 표시하며 조금씩 자랄 때마다 옛날에 그리했던 것처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집에서 더이상 아이들의 키를 재지 않습니다. 더구나 집에서 어른들이 키를 재는 일은 없습니다. 큰아이들과 어른들은 왜 키를 재지 않을까요? 혹시 아이들은 성장하는 존재이고 어른들은 성장이 완성된 존재라는 인식의 가정이 깔려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살면서 성장의 기쁨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요? 정말 어른들은 성장이 완성된 존재일까요?

자신의 성장에는 큰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기독교 교육학자 하워드 헨드릭스는 ‘만일 오늘 성장을 멈춘다면, 내일 가르침을 멈춘다’고 했습니다. 교사는 성장하지 않고는 완성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교사의 인격과 교육 방법보다도 교사의 성장이 더 중요한 교사의 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교사는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배우는 사람, 즉 학생 중의 한 명이라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는 영원히 배우는 중이고 지금도 배우고 있고,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됨으로써 교사인 나는 철저하게 새로운 눈으로 교육과정을 바라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워드는 신학자답게 예수님을 교사의 모델로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성장에 비견하여 교사의 성장 항목을 제시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누가복음 2장 52절에 기초하여 교사는 지적 영역(지혜), 신체적 영역(키), 영적 영역(하나님), 사회적 영역(사람)의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먼저 교사는 지적 성장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지적 성장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수독오거서須讀五車書’라는 옛말도 있지만, 많이 읽는 것보다 책을 꼭꼭 씹어 읽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읽고 씹으며 생각하는 김대중식 독서법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글자만 읽지 말고 등장인물을 통해서 말하는 지은이의 마음을 읽고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지식을 얻고, 고정관념에 깨어나 각성하기 위해서는 토론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토론을 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읽으면 자기 프레임에 갇혀 확증편향에 빠질 염려가 있습니다.

둘째, 신체적 성장과 성숙입니다. 누구나 신경을 쓰지만 아무나 얻지 못하는 것이 건강입니다. 별도의 경비와 시간을 쓰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훌륭한 운동법이 걷기입니다. 걷기는 운동뿐 아니라 철학이기도 합니다. 걷기 시작하면 머리가 따라 움직입니다. 사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왜 소요학파라 하는지, 장자의 사유를 왜 소요유逍遙諭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니체의 철학은 길 위에서 시작되었고 길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교사는 성장의 범위를 영적, 사회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종교를 가졌다면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습관화하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정해서 명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조용한 마음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음을, 분노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조용히 들여다 볼觀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거나 명상할 때 자신의 면모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법입니다.

교사는 학교 밖의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조합이나 교사 단체에 가입해서 교육개선 활동에 직접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시민단체에 가입하십시오. 정 할 수 없다면 시민단체를 정해 회비라도 보내고 그 단체의 활동 상황을 모니터링 하세요. 우리 사회의 한 모퉁이가 밝아질 것입니다.

성장하는 사람이라야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눈 뜨면 밤사이에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해하며 키 재는 곳으로 달려가듯이 어른들, 특히 교사들은 자주 자신의 키를 재보아야 합니다. 신체적 키가 아니라 자신의 사람됨 전체의 크기를 재보아야 합니다. 자기 경험에만 의지하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성장은 나이와 관계가 없습니다. 교사에게 절정이라는 게 있을까요? 있다면 몇 세가 절정인가요? 저를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교사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정년퇴직하는 무렵의 교사가 교육자의 절정이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틀을 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사물과 사람과 현상을 어떤 틀로 보고 있는가, 자신의 프레임을 점검해야 합니다. 프레임에 따라서 젊음과 늙음, 여성과 남성, 내국인과 외국인은 문제가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과제라도 접근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회피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남은 임기가 짧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면 더 빨리 일을 진행시킬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문제를 거두어 내고 앞으로 가야 약간의 진보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혼자 하기 벅찬 일도 동료와 함께하면 조금 수월해집니다. 훌륭한 사람 옆에 있으면 우리도 점차 훌륭해집니다. 심리학에서 ‘단순노출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탁월한 동료 옆에 내가 함께 있음으로 해서, 또 나의 작은 행동이 동료 교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스며드는 순환의 상호작용을 만들어 갑니다. 동료들과 함께 만드는 성장의 학교문화로 인하여 교사는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 거인이 되어 갑니다. 키를 재는 교사, 성장에 관심이 많은 내 옆자리의 동료가 나를 키우는 스승이요, 내가 동료의 스승입니다. 선생님이 교육의 희망입니다.

전종호 주필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다」에서)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이 꽃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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