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열전 1

- 박기영 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4.30 15:21 | 최종 수정 2023.05.16 17:02 의견 0

페북을 하면서 기존 미디어나 오프라인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괴이)하고 특별한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박기영이 그런 사람이다. 그가 충북 옥천에서 옻순잔치를 한다기에 길을 나섰다. 전날 내비를 검색하니 3시간 14분일 걸린다고 한다. 11시 반에 시작한다고 하니 7시에 출발하면 여유 있게 가겠군, 아침에 일어나니 4시간 반, 가면서 보니 비 때문인지 고속도로는 점점 막히고 점점 시간이 늘어난다. 호기심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이런 막히는 길을 가야 되나 나도 미친놈이지 몇 번이나 고속도로를 나가 차를 돌려 집으로 가고 싶었다. 결국 장시간 내비에 휴대폰 배터리는 방전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호기심과 그 주변에 있을 기인(이른바 '잡놈')들의 만남을 기대하며, 금강휴게소에 들러 충전하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가 운영하는 옥천군 청성면 농업회사 법인 참옻들. 도착하니 2시. 옻순 시식 행사는 끝났고, 막 노래판이 벌어질 참이었다.

박기영의 첫인상은 예상한 것처럼 기인풍이었다. 곱슬 흰머리에 검붉은 얼굴의 털보 영감. 그렇다고 나이가 많다는 건 아니다. 내 또래. 그의 배움과 시는 학교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의 삶에서 나온 것이다. 정규교육은 고등학교 중간에 끝냈다. 195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대구와 함양에서 살았고, 서울에서 KBS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캐나다로 이민,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해서 옥천에서 옻을 연구하고 실용화하여 옥천군을 옻 산업특구로 만들었다. 옥천으로 이사한 집 마당에 옻나무 고목이 있었고 그 아래 마르지 않는 옻샘이 있었다니 그가 미워하던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인지, 이걸 필연 또는 인연이라 하는 건지 모르겠다.

1982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사수의 잠'이 당선되고 ‘우리시대의 문학’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국시'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고 1985년 장정일과 2인시집 '聖·아침'(청하)을, 1991년 첫 시집 '숨은 사내'(민음사)를 펴냈다. 그 후 무려 사반세기 만에 두 번째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모악, 2016)을 내어놓았다. 최근에 ‘길 위의 초상화’와 소설집 ‘빅버드’를 냈다. 그는 안도현과 장정일을 키운 시인이다. 그와 문청시절을 함께 한 시인들이 우리 문단에 기라성 같이 빛나고 있다.

그는 월남한 아버지의 행적을 쫓으며 분단의 시대적 의미를 천착했고, 지금은 동학의 길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음식기자 이춘호의 사회와 노래로 진행된 어제 옻순잔치도 특별했다. 춤추는 스님 하유의 막춤 같은 공연이 있었고. 무골풍의 헌헌장부의 여성스러운 몸동작이 매우 인상적. 불정역장 바리톤 최들플(성균)의 아름다운 노래들. 따오기춤의 형남수의 공연 등등. 페북에서 알게 된 조각가 정호용, 젠장 시인 신휘, 김재덕, 김제신. 인사는 못나눴지만 박상봉, 이문재 등을 보았다.

내가 그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읽어 본 시집이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이다. 이 시집은 먹방이 아니라 북한지방 음식 먹시집이다. 아래는 시집의 표제작 전문.

식당 문 열고 들어가면 / 서툰 솜씨로 차림표 위에 써놓은 글씨가 / 무르팍 꼬고 앉아, 들어오는 사람 / 아니꼬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 “옻오르는 놈은 들어오지 마시오.” // 그 아래 난닝구 차림의 주인은 / 연신 줄담배 피우며 / 억센 이북 사투리로 간나 같은 / 남쪽 것들 들먹였다. // “사내새끼들이 지대로 된 비빔밥을 먹어야지.” // 옻순 올라와 봄 들여다 놓는 사월 / 지대로 된 사내새끼 되기 위해 / 들기름과 된장으로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먹는다. / 항문이 근지러워 온밤 뒤척일 / 대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먹는다. // 옻오르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않던 노인은 / 어느새 영정 속에 앉아 / 뜨거운 옻닭 국물 훌쩍이며, 이마 땀방울 닦아내는 / 아들 지켜보고 웃고 // 칠십년대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무서운 / 욕을 터뜨리던 음성만 / 옻순비빔밥 노란 밥알에 뒤섞여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 “옻올랐다고 지랄하는 놈은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놈이여.”//

옻으로 만든 음식들

춤추는 스님 하유
바리톤 최들플(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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