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가게 열기/ 고명재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2.26 13:08 | 최종 수정 2023.02.26 13:12 의견 0

매일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반죽에 섞고
언덕이 부풀 때까지 기다렸어요
물려받은 빵집이거든요
무르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사람이 강물이죠 눈빛이 일렁거리죠 사랑은
사람 속에서 흐르고 굴러야 사랑인 거죠

인연은 크루아상처럼 둥글게
만두 귀처럼
레슬링으로 뭉개진 시간의 살처럼
나는 배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요
저마다의 별 무리 저마다의 회오리
저물녘이면 소용돌이치는 무궁화 속에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장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상상하는 것
페이스트리란
구멍의 맛을 가늠하는 것
우리는 겹겹의 공실에 개들을 둔 채
바스러지는 낙엽의 소리를 엿듣고
뭉개지는 버터의 몸집 위에서
우리 여름날의 눈부신 햇빛을 봐요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오븐을 열면 누렁개가 튀어나오고
빵은 언제나 틀 밖으로 넘치는 거니까
빵집 문을 활짝 열고 강가로 가요
당신의 개가 기쁨으로 앞서 나갈 때
해 질 녘은 허기조차 아름다워서
우리는 금빛으로 물든 눈에 손을 씻다가
흐르는 강물에서 기다란 바게트를 꺼내요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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