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12)/ 김상천

청년 임화의 성공신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2.07 10:51 | 최종 수정 2023.02.20 11:07 의견 0

드디어 한다한다 하던 '문제의' 임화 얘기를 시작합니다.

임화! 하먼 무엇이 떠오르는지...그는 단수가 아니므로 다양한 얼굴을, 다양하게 분장을 한 페르소나를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시인으로서의 임화를 첫손에 꼽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뭐 한국시문학사가 인정하는 공지의 사실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임화의 시인됨을 말하고자 함에 있어 정작 그를 그답게 한 것이 시집 <현해탄>과 더불어 '단편서사시'의 성취라는 것에 이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에 대한 진지한 평론을 얻어보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결과에는 일반적인 원인이 있을 터이니, 여기서는 대체 임화의 단편서사시의 성공요인과 이에 얽힌 이그러진 한국 평단의 풍토를 좀 얘기해 보것습니다.

임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대단한 독서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임화를 만든 것은 팔할이 독서라 할 정도로 그는 열렬한 독서광이었습니다 18살에 가정 파탄으로 졸업 직전 가출한 이후 거리를 떠돌다 보성고보 친구 윤기정, 조명희를 만나 카프에 가입하고는 선배 박영희 집 등지에서 전전하며 동가식서가숙하며, 그러나 굶주린 늑대처럼 그는 허기진 정신을 채워나갔습니다.

"(나는-인용자) 동경서 오는 이 계통의 잡지를 매월 읽고 그 중에도 마리네티의 시와 미요시 주로, 모리야마 게이의 시, 나카노 시게하루의 평론을 열독했습니다 또한 <임노동과 자본>을 비롯하여 이 저자의 꽤 두꺼운 저서를 읽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그때 몇편의 시를 써서 호평을 받고 더욱 팔봉, 석송이 절찬을 해 주셔서 기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자, 이것은 '어느 청년의 참회'에 나오는 일절로 임화 단편서사시의 성공의 비밀을 풀 중요한 열쇠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임화가 동가식서가숙하고 독서에 열을 올리며 카프의 신입 맹원으로 활약할 무렵만 해도 그는 아직 애송이였고 이름 없는 무명 시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여기서 어느 순간은 임화에게 있어 '순수한 사건'이 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이 순수한 사건으로서의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순간이 청년 임화를 일약 조선문단의 기린아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먼 바로 이때 사고의 방향과 틀이 결정되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또한 그에게 대성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먼 대체 임화를 성공시킨 요인은 무엇인지 보아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당대 한국 최고의 학자라 할 조동길은 임화의 '특별한(단편서사시)'시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고 했고, 그 역시 둘째가라먼 서러워할 비평가 유종호(<다시읽는한국시인>)는 임화의 시가 실패한 것은 기교를 홀대하고 사상을 중요시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먼서 임화를 가장 아프게 찌른 김동석을 인용해가며 이이제이의 교묘한 평론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비평의 포기요 후자는 비평의 죽음입니다 대체 비평도 하나의 작품인데 생산적이지 모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알고보먼 여기서도 이데올로기적 줄서기라는 속내가 감춰진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해방 전엔 임화 놈이 제일 무섭게 생각되었다는 정지용의 회고처럼, 저들 또한 임화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과연 '평가할 수 없다'는 말과 '사상' 이라는 단어에 드리워져 있는 그놈의 이념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임화는 카프의 맹원으로 있을 당시 마르크스를 읽고 단편서사시를 써서 일약 조선문단의 꽃이 되었는데, "나카노 시게하루의 평론을 열독했습니다 또한 <임노동과 자본>을 비롯하여 이 저자의 꽤 두꺼운 저서를 읽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 나카노 시게하루는 일본의 프로시인이자 평론가로, 마르크스는 뭐 말할 필요도 없는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요 그가 쓴 대표작을 읽게 된 그때, 그 천둥번개처럼 젊은 청년을 사로잡은 열기와 광기로, 그러나 한없이 나약한 문학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고백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누가 그의 작품을 읽고 김팔봉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것는가 이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주는 진실의 정도는 순수한 사건에 견줄만한 강밀도를 지닌 것으로 대체 작품에 대한 비평적 제의를 수행해야할 비평가를 감동에 젖어 뜨거운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니, 임화의 신화는 증말이지 저 도스또예프스끼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놀라 자빠진 러시아의 벨린스키의 예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보잘것 없는 한국의 문예비평가로서 엄숙한 비평의 제의를 수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감상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습니다 하여 나는 기어코는 대체 임화 단편서사시의 성공의 비밀을 풀어야만 하는 것이니, 이것을 기피했던 저 선배들의 핑계를 조금은 알 듯도 합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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