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11)/ 김상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2.01 07:16 | 최종 수정 2023.02.01 07:17 의견 0

8. 연암 박지원(朴趾源)

자, 나는 지난 회 말미에서 조선의 과학자이자 실학자였던 홍대용의 등장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사제관계로서의 홍대용-박지원의 관계를 말했거니와, 특히 그들을 전후로 민중적 서사체로의 일상생활에 기초한 '조선적' 기풍이 다양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먼서 연암의 <열하일기>와 패사체 소설을 예시로 든 바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번에는 조선철학자 연암 박지원을 통해 조선적 기풍이 어티케 가능했는지 좀 주의있게closely 보것습니다.

역사를 하나의 문체라는 흐름으로 본다면 문명의 역사는 크게 '이미지(시)'에서 '개념(소설)', '명제(에세이)'의 역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푸코, '저자란 무엇인가') 처럼 어떤 노미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는 뭐 대중평자시대입니다 그러니 더욱 설득과 공감이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이는 달리말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명제를 내세우먼서 상대를 설득해나가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과정이 중요한 '상호성'의 민주주의 시대가 대세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즉 민주주의의 전제는 상대주의이고, 이 상대주의의 전제는 절대주의입니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인정된 세계는 저 카프카의 <성>처럼 높고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사회입니다 그것은 또한 권위를 지닌 개념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개념-대표적으로 '신'처럼, 이는 '양반'도 마찬가집니다-앞에서 굽신거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살아왔던 것이니, 그것은 매우 보편적이고 타당한 이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된 바의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건데, 프랑스 대혁명의 후속 조치로 수도원이 경매물로 나오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는 수도원을 지키는 신부의 비행이 낱낱이 고발, 풍자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경우도 초기 대원군의 개혁 당시에 서원을 혁파했던 기억이 있고, 보수적이었던 김동인조차 <운현궁의 봄>에서 이 서원이 조선의 똥막대로 모든 죄악의 온상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중세사회를 유지해왔던 실질적인 세력들이 허구의 성을 쌓고 민중을 다스려왔음을 짐작하게 하는데, 이 허구의 성은 그대로 말의 성이고 개념의 성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중세의 성을 유지하는 말의, 개념의 성을 혁파시켜야 했는데 그것은 그대로 그들이 믿고 있고 강요하는 개념들이 가짜fakes임을 인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고, 그러니 근대는 필연 인식론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입니다 바로 여기, 근대로의 이행에 앞서 지킬 것이냐 깰 것이냐를 두고 보수와 진보, 실재론과 유명론, 시와 소설의 대투쟁이 벌어졌으니 이것은 중세말과 근대초기철학사를 가로지르는 역사적인 철학논쟁으로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번쇄한 우리의 이기논쟁, 호락논쟁 또한 이러한 논쟁의 성격을 지닌 역사적인 논쟁으로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논쟁은 설득을 전제로 하고 설득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객관적이고 믿음직한 전거가 요구되었던 것이니, 이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에게 근대적 사고를 일으키는데 힘이 되었던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박지원에게 근대적 사고를 불러일으킨 스승 홍대용의 지전설 또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의 '허생전'에서 저 망한 나라라도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명나라를 따르고 청나라 오랑캐를 쳐야 한다며 북벌론北伐論을 들이대는 우암(송시열)학파를 공격한 이유도 이것이고, '호질'을 통해 이 우암학파의 북벌론을 상징하는 북곽 선생의 허위-그는 도덕선생으로 존경받는 자이나 성이 다른 아들을 다섯이나 두고 있는 수절과부 동리자와 오늘밤도 그짓을 하러 밤에 나섯다가 범에게 들켜 도망가다가 똥구덩이에 빠집니다-를 고발, 풍자하며 기염을 토한 이유도 바로 저들이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효니 충이니, 성이니 의리니 하는 개념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짜 개념이라는 유명론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명론은 최초의 유물론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대로 이것은 조선이 근대로 나아가는데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제1과제로, 가령 영국은 이 유명론을 통해 중세 로마의 기독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근대의 경험론인 유물론을 통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대체 연암이 왜 유명론적 현실학파의 우두머리로서 무역을 중시하고 수레를 중시하였는지, 그는 일찍부터 중국은 무론 일본과도-'허생전'의 장기도長碕島는 지금의 나가사끼로 근대 일본의 개항장으로 이곳을 통해 일본은 서구의 근대를 학습하는 통로로 활용하였습니다-무역해야 하는지 역설하는 등 그는 참으로 조선의 비범한 유명론자였습니다.

자, 그러먼 구체적으로 '호질'을 통해 탈마법화로서의 중세에서 빠져나오기가 어티케 철학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보것습니다 그 형식에서나 내용에서나 모범적인 평가에 부합하는 완미한 작품은 <허생전>이나, 그 형식과 내용은 무론 사상의 깊이를 논하고자 한다먼 <호질>을 말하지 않고서는 연암을 논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호질>은 문제적입니다.

홍기문은 1937년 연암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조선일보에 6회에 걸쳐 '연암의 예술과 사상'을 연재하고 있는데, 그의 예술도 예술이려니와 방점은 역시 그의 사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연암의 풍자문학은 오직 조선만이 아니요, 한토를 통하여서도 단연 타인의 병견을 허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서는 "그러나 연암의 위대한 점은 그 문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몇배 더 많이 그 당시에 있어 가장 참신하고 탁월한 그 사상에 있는 것이니"하고 연암의 사상가로서의 평가에 큰 의의를 두었습니다 대체 홍기문은 정인보의 말대로 '조선학'을 크게 성취한 대학자로 그는 또한 카프의 맹원이 아닌가 그런 그가 연암을 극찬한 이유가 단순한 의례를 넘어 참신하고 탁월한 사상가라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참신하고 탁월한 사상을 논하기 전에 잠시 ‘허생전’, ‘호질’이 모두 실린-이뿐이 아닙니다 <열하일기>에 실린 그의 작품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에세이만도 아닙니다-대문호이자 대사상가로서의 위의를 드러낸 연암의 걸작이 바로 <열하일기>-최근에 만나 본 한국철학자 이정우에 따르먼,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만한 단 하나의 작품을 꼽는다먼 단연 <열하일기>라고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이거니와, 그러나 이것을 서구의 이분법의 시각으로 보먼 그저 잡문의 콜렉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독창도 아니요 듀엣도 아닌 저 교향交響에나 비유할 작품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것은 ‘김치’나 ‘비빔밥’, 도는 쌈밥 같은 한국적 변증법에 해당하는 고유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예의 불일사상不一思想의 예술적 반영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시도 아니요 소설도 아닌, 시와 소설 그 이상입니다 또한 이것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한데 어우러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으니 조선 문원文苑의 일대 장관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문사철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광휘를 드러내고 있는 웅장무비한 그의 사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건대, 이것은 그만의 작이 아닙니다 가령, 저 세계의 문화 괴테가 어찌 혼자서 된 것인가 그의 문학의 세계에는 호메로스도 셰익스피어도 스피노자도 페르시아도 인도도 들어와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도 결국은 독일의 강과 숲이 낳은 자식입니다 '마왕'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원효로부터 발원하여 흐르기 시작한 조선사상의 물줄기는 어느새 강물이 되어서는 너른 들을 적시며 흐르고 흐르다가 때로는 넘치고, 때로는 지하로 스미기도 하고, 또 때로는 쇠잔하여 아주 없어진 듯 하다가도, 그러나 드디어 영정조를 전후 다산과 홍대용, 연암에 이르러서는 대하수면을 이루고 장강대하의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선사상의 물줄기가 봇물처럼 흘러넘쳐서는 대하수면을 이루고 장강대하를 이루기 위해서는 또한 사마티엔이 있어야 했고 반고가, 시경이, 노장이 있어야 했고 고불이 있어야 했으며, 또한 <삼국지> 등 기서들이 있어야 했고, 저 공안파의 선구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만의 사상이 아닌가 그리하여 괴테가 세계의 숲을 보고 독일의 어두운 숲에서 마왕魔王을 창조하고 '마성the Demonic'을 낳았듯이, 우리의 연암 역시 중화 세계의 강물을 들이키고 조선의 강물에서 ‘조선의 국풍朝鮮之風’(‘영처고서’)을 창도하고, '조선학朝鮮學'을 낳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호질虎叱’을 보것거니와, 이에 대해서는 이미 조동일(<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 중 '18세기 인성론의 혁신과 문학의 사명', 지식산업사)이 "홍대용과 박지원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내외나 화이의 구분도 상대적이라면서 화이론의 가치관마저 부정했다"고 정당하게 평가했습니다 이는 결국 연암의 대표작을 통해 드러난 사상의 종지가 ‘주체성subjectivity’의 문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연암의 사상을 비로소 근대 사상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연암의 사상을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사상사의 흐름으로 볼 수 있게 되었거니와, 연암의 사상이 왜 하나의 유명론으로서의 '조선적 리얼리즘'인지를 규명할 수 있는 단서를 봅니다.

'호질'은 열하일기 '관내정사편'에 수록된 단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광맥에서 은칼, 금칼이 번쩍이듯 우리는 거기, ‘호질’에서 번쩍이는 금편을 마주합니다 거기, 북곽선생과 범의 관계는 이기理氣·성정性情·인물人物·화이華夷, 그리고 시와 소설을 상징합니다 북곽선생은 또한 북벌의 상징 송시열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조선학의 거두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에서 "그는 심박한 포부를 가지고 베풀 곳이 없어서 당세에 융성한 우암尤庵학파를 기자譏刺하며"라고 평했거니와, ‘기자譏刺’는 나무라며 비꼬아서 말한다는 것이니, 이는 연암 사상의 골격을 짚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론 송시열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당세의 지배담론은 "남한산성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내려"('허생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대부들이 북벌의 야심을 드러내고, 그것을 하나의 국시로 삼아서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게 된 시대의 이념이 하나의 공기이자 시대의 정서이자 하늘이던 시대, 연암은 그 무엇을 믿고 거대하게 구르는 시대의 수레바퀴에 홀로 뛰어든 사마귀가 되었는지...그는 참으로 무모한 조선의 당랑거철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과연 대문호였습니다 그렇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놈이 대놓고 사문斯文-‘사문’은 이 학문, 이 도라는 뜻으로, 유학의 도의나 문화를 말합니다 그러니 이 사문을 거스르는 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되었던 것입니다-을 비판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예의 간접화법을 마음껏 구사하며 비유와 풍유로 지배담론의 허구를 기자하였으니, 그것은 필시 그의 천재적인 능력입니다 하여 ‘북곽선생’은 의리와 명성이 자자한 선비로 이름을 얻은 자였으나 여우의 본색을 지닌 자이고, 같은 동리에 사는 과부로 그 또한 절개로 이름을 얻은 ‘동리자’라는 미모를 지닌 여자와, 그러나 그녀 또한 수절을 잘 한다지만 성씨가 다른 자식을 다섯이나 두고 있는 간사한 여자입니다 어느 날 범이 배가 고픈데 창귀가 선비고기를 권하였습니다 인자하고 의리가 있으며,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음양오행을 교묘하게 암시한 것입니다.

그러니 대뜸 범은 발끈하며 얼굴색이 변하여 불쾌해 하먼서 말했습니다 "음양이란 것은 기氣 하나가 왔다 갔다 변화하는 것이거늘, 이것을 둘로 나누어 놓았으니, 선비란 것의 고깃덩이는 잡스러울 것이다 오행이란 본래 제각기 정해진 자리가 있어 서로 낳고 낳게 하는 상생관계가 아니거늘, 지금 억지로 어미와 자식 관계로 만들고 있다" 자, 여기 연암사상의 골격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연암은 당세의 지배담론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음양오행론을 보란 듯이 해체하고 있습니다 음양은 기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데서 원효 이래 조선사상사의 주맥으로 흘러온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서의 생성의 사상을 볼 수 있고, 또한 오행이란 제각기 정해진 자리가 있다는 데 중세의 모화사상을 넘어 주체성을 지닌 조선사상가의 고유의 눈깔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놈을 먹을 수 없다 하먼서 나섰는데 하필 그날 밤-여기 낮이 양의, 위선의, 가면의 시간이라먼 밤은 음의, 가면을 벗기는 진실의 시간입니다-에 과부와 정사를 벌이는 중에 자식들에게 들켜 도망치다 똥구덩이에 빠진 북곽선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범이 "아이쿠 구리구나!"하는 대목에서 위선적인 선비를 조롱, 기자하는 연암의 천재가 빛나거니와,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먼서 범의 덕을 늘어놓는 북곽선생에 대해 범은 호통을 치며 "가까이 오지도 마라 내 일찍이 들으매 선비 유儒 자는 아첨 유諛 자로 통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하고 낯간지럽게 아첨을 해대는 선비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 행태를 통렬하게 비웃습니다 이것을 저 보카치오가 신부들의 허세와 아첨, 성모럴을 대범하게 풍자한 <데카메론>에 견줄까, 실로 중세의 신화가 와르르 무너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인간의 성품은 이렇게 동물보다 모하다니 범의 호통을 더 들어보것습니다.

"너희 인간들이 이치를 말하고 성을 논할 때 걸핏하먼 하늘을 들먹거리지만, 하늘이 명한 입장에서 본다먼 범이나 사람이나 다같이 만물 중 하나다...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먼 실제로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이 뚜렷하것지만, 하늘이 명령하는 기준에서 본다먼 은나라의 모자나 주나라의 면류관은 모두 당시 국가의 제도를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하필 지금 청나라의 붉은 모자만은 홀로 의심하여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가".(밑줄-글쓴이)

자, 이것은 실로 놀라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게는 저들의 소중화 모화사상의 절대성을 해체함이요, 크게는 근대의 자주적 평등사상을 드러낸 혁명적 인식이요, 비교하자먼 이것은 그들만의 오로지 하나뿐인 신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적 실체로서 만물이 신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낸 저 작지만 강한 나라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범신론이요, 나아가 이것은 또한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며 근대의 ‘인간’ 중심논리를 깨부순 니체의 망치철학과 통하지 않는가 홍기문의 말대로 연암은 과연 탁월한 사상가가 아닌가 말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또한 주목하지 않으먼 안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형식의 문제입니다 연암의 유산들이 거의 소품문에 가까운 짧은 단편에 불과한 잡문들이지만, 그렇지만 여기, '호질'만 보더라도 비유를 통해 공격의 화살을 피하는 예지를 발휘한 점도 기발하지만-비유를 통한 우회적 수법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이야기는 약자의 자기방어수단임은 <이솝 우화>가 잘 보여줍니다-오히려 거침없이 자유롭게 써 내려간 글에서 우리는 하나의 형식이 다만 형식이 아님을 봅니다 즉 형식은 사상의 연장입니다 다시 말해 연암이 '허생전'을 비롯 '호질', ‘마장전’, ‘예덕선생전’ 등 민중적 서사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가 당시까지도 주류라고 인식되어 왔던 고문古文의 시형식을 파괴하고 자유로운 산문형식을 도입하여 당세의 이슈를 담론화하는 데는 당세의 현실을 반영한 당세의 형식을 통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그는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고문古文이 아닌 시문時文, 그러니까 당세 민중들의 이야기 형식인 패관소품체稗官小品体를 과감히 수용했던 것이니, 사실 연암의 진정한 성취는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암의 패사체 시문이 중요한 이유는, 정확하게 말해서, 연암이 고문을 취하지 않고 당세의 형식인 민중들의 비속卑俗한 이야기를 따른 것은 바로 그래야만 삶과 예술이 결코 다르지 않은 불이적 기일원론으로서의 ‘조선적 리얼리즘’을 성취할 수 있음을 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의 국풍’을 세운 연암의 문학과 사상이 왜 오늘 조선학의 모형으로 자리잡았는지, 그것은 바로 말과 문자 속에 감추어진 숭고미의 실체를 날카롭게 쏘아본 근대 인식론의, 유명론의, 비판적 사실주의의 힘이었습니다.

燕巖 박지원의 초상(손자인 朴珠壽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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