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언어, 소생의 힘>/ 박명순 평론집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2.12.28 10:55 | 최종 수정 2022.12.28 11:04 의견 0

박명순의 문학평론은 공감의 언어다. 여기서 공감이라는 말에는 공명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공명’ 자체에 비판이 기본 속성으로 깔려 있을지 모른다. 비유하자면, 작품을 먼저 끌어안은 다음에 체온을 충분히 공유한 후 작품의 ‘얼굴’을 확인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행위에는 이미 공유한 체온을 충분히 믿지 못해서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차이마저 서로 긍정하자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박명순의 문학평론에는 날이 서 있지 않고 마치 새 둥지 같은 느낌을 준다. 비판은 곧 탄핵이라는 살벌한(?) 정의가 고래로부터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언어이지, 박명순의 언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명순의 비평 언어는 분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말 걸기’ 내지는 ‘대화’에 가깝다.

이에 대해 추천사를 쓴 황규관 시인은 “자칫하면 인정 비평으로 흐를 수 있지만, 박명순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자기 지역에 사는 작가와 시인을 주목하는 비평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은 격려할 만하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충청 지역 작가들을 호명할 때도 저자는 예의 그 공감의 언어를 잃지 않는다.

이 책은 1부에서 소설 비평을, 2부에서 시 비평을, 3부에는 일종의 주제 비평을 실었다. 특히 3부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 시대 문학의 흐름과 관련하여 ‘연대’, ‘생명력’, ‘한국시 미래’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담아봤다면서 여러 시인과 소설가를 호명하는데 그 면면이 치우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저자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는 바, 이미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해명하지 않듯이 저도 묵묵히 글쓰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공감하는 바가 남다르다. 이언주의 시를 읽으면서 표출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그것은 여실히 드러난다.

엄격한 의미에서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고통을 다소 줄여줄 수는 있을 것이나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일 또한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이 받은 고통을 우리 시대의 질병이나 인간존재의 미미함으로 인식하는 일은 귀하다. 비천함과 고귀함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속됨과 성스러움의 실체를 증명하는 시편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음률의 강렬함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이다.

박명순 문학평론집, 삶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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