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6)/ 김상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2.12.08 10:14 의견 0

3, 김시습

유명론은 동화同化가 아닌 이화異化로, 권력에 대한 비판의 산물입니다. 또한 실재론의 허구를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는 유명론은 새롭게 보기의 인식론적 혁명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번에는 매월당 김시습을 통해 조선적 유명론의 세계를 들여다 보것습니다.

조선적 유명론의, 김시습의 권력에 대한 비판은 현실적으로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쿠테타 정권에 대한 불만이지만 그의 작업은 소설이라는, 그것도 조선 최초의 소설이라는 평가에 걸맞는 형태로 표현되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는 자신의 불우한 인생을 소설 형식에 담아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창조했는데, 여기에 여러 가지 의미가 박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먼저, ‘금오金鰲’는 경주의 남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조선적 배경을 암시하는 코노테이션입니다. ‘신화新話’는 새로운 이야기로, 요즘 말로 나의, 일상의, 내면의 이야기를 담은 근대적 ‘소설novel’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 여기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지닌 소설의 의미를 지닌 금오신화의 ‘새로움’의 의미는 실제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지배형식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입니다. 전통의 지배형식은 무론 찬가의 성격을 지닌 ‘시조時調’ 또는 ‘한시漢詩’입니다. 이것은 대개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적 형식을 지닌 운문으로 이때 先景은 자연을, 後情은 인간을 말하는 것이니 ‘천지부모天地父母’처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기반으로 하고 유교적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귀족들의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배적인 형식은 현실모방에, 미메시스, 실재론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이런 사실은 전통질서를 대변하는 공자의 다음 말로 층분히 증명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이것은 <논어論語>에 나와 있는 전언으로 공자는 괴력난신, 그러니까 귀신이야기 또는 오늘의 말로 판타지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리얼리즘과 판타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현실과 이상, 귀족과 평민, 시와 소설, 실재론과 유명론 등으로 계보화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통의 지배적인 형식이 ‘분리’라는 배타적인 모럴에 기반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런 지배적인 모럴은 귀신이야기는 격이 낮고 허왕된 이야기라는-중국에서는 지괴志怪 소설의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신화가 단순한 귀신이야기가 아니라 ‘사랑과 영혼’처럼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정을 통하기도 하고, ‘오페라의 유령’처럼 귀신이 나와 충격을 주기도 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좀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일상생활의 관습을 깨고 고정관념이 된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판타지의 성격처럼 귀신이야기, 주로 원한의 성격을 지닌 <금오신화>의 이야기가 매우 전복적subversive이라는 점입니다.

점 쉽게 말하자먼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월호든 용산 참사든 갑자기 사고를 당해 가족과 이별한 불행처럼 이런 불행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호명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개가’라는 마르께스의 걸작 <백년의 고독> 또한 그링고들에게 희생당한 남미 원주민들의 불행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문학의 공리적 성격을 무시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금오신화>도 현실적으로는 매우 공리적인 문학입니다. 그러니까 왜구든 몽고군이든 나라에 불행이 닥칠 때 그 불행의 당사자는 평범한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갑자기 생사를 감당하지 모하고 불행하게 운명하게 되었음을 특별하게 인식하고 그들의 억울한 삶을 다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귀신이야기라는 형식을 빌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이는 그만큼 민중의 서사가 전복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사례로, ‘전복의 문학’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로즈메리 잭슨의 고전 <환상성fantasy>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환상이란 문화적 속박으로부터 야기된 결핍을 보상하려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으로, 요컨대 환상은 욕망에 관한 문학으로서 부재와 상실로 경험되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밑줄-글쓴이)라는 것인데, 과연 이승에서 자신의 정을 다하지 모하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원혼들을 위무하는, 그러니까 하나의 ‘결핍 모티프’로서 부재와 상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판타지는 어느 시대나 불가피한 존재의 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학도 하나의 의식의 형태로, 이런 문학적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작가도 또한 하나의 의식의 형태로서의 자신의 이론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김시습이 보여주고 있는 의식형태로서의 철학이 매우 주요하다는 점입니다. 즉 김시습은 ‘남염부주지’의 박생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일리론을 펼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일찍이 천하의 이치는 하나일 뿐이라고 들었다. 한 가지란 무엇인가? 두 이치가 아니란 뜻이다. 이치란 무엇인가? 천성을 말한다. 천성이란 무엇인가? 하늘이 명한 바다.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써 만물을 만들 때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었는데 이理도 또한 거기에 각각 조리를 가지는 것이다.”(밑즐-글쓴이) 그러니까 금오신화의 철학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일리론一理論’은 주기론자主氣論者로서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이론적 모토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 그렇다먼 기일원론이라는 유명론적 성격을 지닌 이론이 <금오신화>의 원귀에 대한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지, 지배자들은 종묘宗廟를 비롯한 조상들의 제사는 인정하먼서 백성들의 귀신이야기는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이고 위선적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이야기로 보자먼 독재자는 현충원으로 모시먼서 세월호 분양소는 없애려는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김시습은 ‘귀신설’에서도 ‘천지지간天地之間 유일귀唯一氣’라고 천지 사이에서 오직 하나의 기가 있다고 자신의 유명론적 이기관理氣觀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배적 형식인 한시와 시조 등을 떠받치고 있는 실재론적 유심론에 대한 울타리 밖의 저항담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귀신 이야기는 대체로 억울하게 죽은 귀신은 흩어지지 않고 떠돌며 인간사에 불행을 초래한다는 내용을 주로 하는 형식입니다. 이것은 ‘귀신도 때가 되먼 흩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여기서 ‘때’는 무론 억울함이 해소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귀신도 때가 되먼 흩어진다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세계인식이 변화에 기반한 경험적이고 유물론적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 존재 세계의 실상이자 진상입니다.

바로 여기, 중세적 지배 담론에 대한 저항서사로서의 유명론적 사실주의의 출발이 있습니다. 조선적 사실주의의 출발로서의 <금오신화>의 진지한 의의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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